편지 속에서 인간 마르크스를 만나다
필로소픽 2026/02/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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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 편지 모음 : 200년 만에 도착한 편지
- 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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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6-01-30
: 200
『200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이론가이자 혁명가였던 카를 마르크스가 가족, 친구, 지인 등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서간집이다.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특별연구원 이회진이 엮은 이 책은 국내 최최의 마르크스 편지 선집이다.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크고 무겁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그의 이름은 끝없이 소환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들어가며>와 <나오며>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글인데, 이 두 글을 통해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들어가며>에 실린 아주 짧은 마르크스의 전기는 이회진 편역자에 따르면 마르크스 생전이나 사후에 작성된 그 어떤 전기보다도 마르크스의 생애와 업적을 압축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오며>는 엥겔스의 기고문 「카를 마르크스 장례식」에서 발췌한 글인데,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을 기리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노동운동 전체에 과학적 기초를 제시했다. 엥겔스는 <들어가며>에서 마르크스가 학문의 역사에 남긴 수많은 중요한 발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요약한다. 첫 번째는 그가 세계사 이해 전체를 완벽히 전복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 이전까지 모든 역사적 변화의 최종 근거는 인간의 변화하는 이념이 아니었다. 정치적 변화가 역사 전체를 지배한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에게 있어 이념은 어디에서 나오고, 정치적 변화를 추동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추적해서 밝혀냈다.
두 번째로는 마르크스가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해명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내부를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밝혀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점을 증명했다. 자본주의적 착취 형태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봉건 영주, 자본가 등 언제나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웅대한 기관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간 마르크스
인문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을 수백수천 번 들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너무나 압도적이다. 마르크스와 관련된 수많은 교양서가 존재한다.
그간 마르크스에 관한 글을 꽤 많이 접했다. 대부분의 글들은 이론가, 사상가,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 내지는 '맑스'였다. 인간 마르크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 마르크스를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년 마르크스, 아들 마르크스, 남편 마르크스, 아버지 마르크스, 친구 마르크스, 작가 마르크스, 사상가 마르크스 등을 만날 수 있다.
청년 마르크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청년 마르크스가 쓴 편지를 실었다. 책의 제일 첫 번째 편지는 1837년 11월 10일 베를린에 있는 청년 마르크스가 트리어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마르크스가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법학이 아니라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다. <법학에서 철학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이 편지는 청년 마르크스가 가진 철학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본인이 법학을 전공하길 원했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동원한 법철학적 지식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1818년 생이니 이때가 만 19세 한국 나이로는 20세 정도인데, 글의 깊이는 역시 '마르크스'구나 하고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 삶에는 마치 이정표처럼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도 분명히 가리키는 순간이 있습니다. (...)
세계사 자체는 이런 식의 회고를 즐기면서 가끔은 퇴보와 정체라는 가상을 눌러쓴 자신을 보곤 하죠. 그런데도 세계사는 자신을 안락의자에 던져 놓고, 자신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신적 행위를 지적으로 꿰뚫어 보려는 일만 할 뿐이에요.
그러나 이런 순간에 개인은 서정적으로 됩니다. ”
__1837년 11월 10일, 카를 M. 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
추방자, 망명자, 무국적자 마르크스
책의 제2부는 추방된 자로서 마르크스의 삶이다. <끝없는 가난>이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브뤼셀로 추방되면서 망명자, 무국적자 신세로 끝없는 가난 속에서 불확실한 삶을 보냈다. 어린 자식 세 명이 죽었고 그의 아내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치욕의 순간들도 편지 속에서 읽을 수 있다.
“ 짧게 한 문장만 쓸게. 오늘 1시 15분에 작은 애가 죽었어. ”
_ 1852년 4월 14일 런던의 마르크스가 맨체스터의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 사랑하는 아이가 죽으니 집은 으레 황량하고 적막해. 그 애가 우리 집에 활기를 불어넣은 영혼이었는데, 아이의 빈자리가 우리 곁의 모든 곳에서 느껴져.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이미 온갖 종류의 불운을 겪어 봤지만, 이제야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완전히 망가진 기분이야. (...)
이런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나를 붙잡아 둔 것은, 너와의 우정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함께 이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야.
덧붙임 : 아내가 방금 너에게 몇 줄 쓴 것도 동봉할게. ”
_ 1855년 4월 12일 런던의 마르크스가 맨체스터의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마르크스의 벗, 엥겔스
책의 제3부는 평생토록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엥겔스와 결별하게 될 뻔한 순간과 화해 과정을 담고 있다. 엥겔스에게도 마르크스는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한 벗이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엥겔스가 얼마나 도량이 넓은 친구였을까 상상하게 된다. 엥겔스는 추방자에 무국적자에 빈털터리인 친구가 겪는 온갖 종류의 불운을 위로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우정이란 호혜적 관계에서 싹튼다. 일방적인 관계는 대게는 지속될 수 없다고들 한다. 1863년 1월 7일 엥겔스는 그의 동반자 메리 번즈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마르크스에게 썼는데, 마르크스는 그 편지에 대한 답장에 위로보다는 자신의 궁핍한 삶을 다시금 설명하면서 돈을 빌려 달라는 내용을 썼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결별할 뻔했다가 화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인간 엥겔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책은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만 싣고 있지만, 편지의 주석에는 엥겔스가 쓴 답장 일부가 실려 있다. 편지와 주석을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나눈 우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슴푸레 짐작을 해본다.
“ 네게 답장을 쓰기 전에 시간을 얼마쯤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한편으로 네 상황이, 다른 한편으로 내 상황이, 이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더라.
네게 그 편지를 쓴 것은 내가 보아도 그릇된 일이었다. 그 편지를 보내자마자 후회했어. 하지만 이 일은 결코 냉혹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야. 네 편지가 도착했을 때 난 나의 가장 친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으니까. (...) 그런데 그날 저녁 네게 편지를 쓸 때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인지라 그런 일이 벌어져 버렸다. (...) ”
_1863년 1월 24일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제4부는 인류의 업적이자 유산으로 칭송받는 『자본』의 출판 전후 과정을 담고 있다. 현재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를 병행하여 읽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본』의 탈고 과정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마지막 제5부는 노년의 마르크스가 떠난 요양 여행을 보여준다.
***
언제부턴가 서간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 소설가가 주고받은 서간집, 주요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는 서간집, 신경외과 의사가 동료 학자와 주고받은 서간집 등 여러 분야의 서간집을 읽어왔다. 이번 책 『200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인간 마르크스를 펼쳐 보인다. 압도적 두께와 난해함을 자랑하는 『자본』 원전 읽기는 아직 시도조차 못했기에 그간 내게 '카를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범접 불가한 커다란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내게 인간 마르크스를 소개해 주면서 그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덤으로 친구 엥겔스도 소개해 준다. 나는 난해한 책을 읽을 때 비록 내용은 소화하지 못할지언정 작가와의 거리를 크게 느끼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유독 너무나 컸다. 아마 내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해서 마르크스를 읽어갈 텐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무척 소중한 읽기의 시간이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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