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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
  •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 루스 윌슨
  • 17,820원 (10%990)
  • 2025-12-16
  • : 4,310
🌿책읽기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사람

책읽기가 곧 삶인 사람들이 있다. 평생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독서로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삶에서 겪은 온갖 경험들과 쓰디쓴 인생의 고비들을 해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간 읽어온 것들이다. 기억은 읽어온 것들과 비교하여 반추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해석된다. 이들은 본인의 삶을 변화시킨 ‘인생책’이 있다고, 문학이 본인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책의 지은이 루스 윌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1932년 호주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이다. 저자의 조부모는 20세기 초에 팔레스타인(당시는 오스만 제국)을 떠나 호주로 정착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저자는 오빠와 비교해서 별 차별 없이 자랐고 공교육을 받았으며 대학도 졸업했다. 안락한 집에서 풍족하게 자랐다고 회상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밤마다 본인과 오빠에게 동화를 읽어주었다. 저자는 타고난 독서애호가라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가정배경(부모님의 교육관, 넉넉한 가정 형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의 사회적 환경, 여성에 대한 차별 없는 교육 등이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교차하여 읽는 인간으로서의 저자 루스 윌슨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국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여성이었다면 이 책의 지은이의 형편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저자의 독서는 주로 소설이었다. 저자는 독서 생활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꼽는다.


🌿예순 즈음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다.

저자는 예순 즈음 삶에 정나미가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품는다. 이룰 수 있었는데 못 이룬 것들이 서럽고 다가올 날도 서러워졌다. 한편 저자는 꽤 운이 좋은 여성이다.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집’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부장제에 예속되어 결혼생활 이후의 삶 대부분은 가족의 것이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성장한 사람이 가부장제에 아무런 불만 없이, 집안의 천사로 살아온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
___19쪽


🌿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여섯 권을 다시 읽어가는 것을 재활 치료라고 생각하고 독서에 열중한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 독서 생활의 맥락에서 지나온 삶을 복기하고, “헝클어진 내 마음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해보기로 한다.

저자는 “결혼 생활의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나이 일흔에 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는다.

“ 읽는 사람은 상호 교섭의 일환으로 저마다 ‘과거 경험의 저장소‘에 든 것을 끄집어낸다는 로젠블랫의 단순 명료한 설명을 듣고 나도 글을 읽는 눈이 뜨였다. “
__36쪽


🌿제인 오스틴 소설을 해독제처럼 섭취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의 어떤 점이 해독제로 작용했을까? 한편 해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땅의 모든 여성은 다양한 교차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1930년대 즉 종전 이후 호주 대륙에서 유대인 가정의 의사 딸로 태어난 어느 여성(이 책의 저자)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의 또 다른 호주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주 희미하고 피상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 종전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세상은 올드 노멀로 되돌아갔고 젠더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가시적인 움직임들이 나날이 후퇴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 초기가 일종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한다는 기쁨이 아니라 가장에게 순응을 요구하는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 _88쪽

” 나는 자율과 독립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라 믿었고 우리 어머니 세대에게는 어림도 없었을 대학 교육을 당연하게도 받은 입장이었는데도, 가만 보니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확히 말하면 이건 현실과의 대립이었다. 페미니즘 역사에서 잘못된 쪽에 태어난 자의 굴레라고 해야 하나.“ _88-89쪽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동반자적 결혼 관계를 기대하였으나, 실제 결혼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어느 결엔가 나는 결혼 공화국의 이등 시민이 되어버렸더라.”라고 말한다.

나의 어머니는 저자보다 대략 20년 뒤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데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동반자적 결혼 관계에 세뇌되었고 여기서 비롯된 환상을 품고 산 나머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평생에 걸쳐 불화했다. 문득 나는 이 세상의 여성들이 저마다 가진 결혼관에 어떤 것들이 스며들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늙어가는 처지에 여전히 로맨틱한” 저자가 만약 제인 오스틴을 읽지 않았다면 다른 결혼관을 가졌을까? 그랬다면 결혼 생활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어쨌거나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결혼관으로 인해 현실의 결혼 생활에 불행을 느끼기도 되지만, 결국 제인 오스틴으로 스스로의 불행을 해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1950년대와 1960년대, 그 시절 내 주변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인생이 던져놓은 예상을 빗나간 패를 받아 들고 그걸 어찌 처리하나 고심하고 있었다. 가까운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 교육을 받고 곧바로 결혼을 했다. 자진해서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불륜이 원인이었는지 증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방이 불륜이었다. ”
_89-90쪽



저자는 인생의 희비고락을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다시 해석한다.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삶을 해석한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을 통해 자기 인생 스토리를 이해하고 자기 삶과 타협점을 찾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구의 백인들이 가진 행복, 삶, 자기애, 이성, 감성 등에 대한 관념을 계속하여 의식했다.

나는 저자와 같은 수준의 삶에 대한 통찰 따위는 없다. 그러나 나 역시 책들의 도움으로 위에 언급한 단어들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환상, 거품 등은 몇 마디 보탤 수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20세기 이후의 소비주의 사회가 주입한 환상이 강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우리는 개개인의 감정을 너무나 중시한다는 것(나르시시즘적 문화), 서구식 이성과 감성의 대립항 대비는 틀렸다는 것, 삶이 평탄해야 한다는 기대는 환상이라는 것, 불행과 실패라는 단어는 틀렸다는 것, 나의 기대 대부분이 어리석다는 것 등등.

저자는 『이성과 감성』을 읽으며 서구식 이성-감성 대립항 구조는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성과 감성은 인간 성장의 필수 요소이다. 『에마』를 읽으며 나르시시즘적 자기애를 버리는 법을 배우며, 자신과 타자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다가간다.

****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밑줄 그을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오로지 읽기 위해 산다. 읽는 것 말곤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의 <나가며>에 굵은 밑줄을 그은 부분을 소개하며 이 독후감을 끝내야겠다.

“ 좋은 뜻에서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간혹가다 그 의미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섭리라고 생각하는데, 섭리라는 것이 내 의식 안에 상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당장은 알 듯 말 듯 하다가 수년을 돌고 돌아서야 인생에서 그것의 자리가 밝혀지기도 한다. ” __ 393쪽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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