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국가폭력, 간토대진재
필로소픽 2025/08/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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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동안의 증언
- 김응교
- 15,300원 (10%↓
850) - 2023-09-01
: 671
『백년 동안의 증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응교 선생님이 쓴 책으로, 1923년 9월 일본 간토 지역에서 벌어진 참극 조선인 대량 학살의 기억을 복원하여 진실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용서화 화해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진도 7.9강진이 도쿄와 간토 일대를 강타했다. 지진 발생 세 시간 후, 오후 3시경부터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타고 있으며, 조선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습격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다.
9월 2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조선인 폭동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집단 학살이 일어난다. 나라시노 기병 연대, 헌병들, 경찰들, 자경단은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민간인들도 조선인을 죽이는데 동참한다. 한인이라면 아이, 여자, 노인, 노동자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조선인으로 오해받는 일본인들도 살해당했다.
1923년 12월 5일 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 학살로 인한 피살자 합계를 총 6,661인이라고 보도한다. 이 숫자는 실종자를 포함한 숫자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장 포괄적인 조사였기에 유의미하다고 평가한다.
대규모 조선인 학살이 가능했던
몇 가지 동기
이 책에서는 대규모 학살이 가능했던 몇 가지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두려움은 혐오를 만들고, 혐오는 폭력을 만든다.
2. 일본의 노동 시장을 조선인이 빼앗는다는 불안이 넓게 퍼졌다.
3. 조선인을 비하하는 ‘후테이센진‘이라는 이미지
4. 계엄령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혐오성 유언비어가 결정적이었다.
5. ‘자경단’이라는 훈련된 예비 학살 조직이 있다.
6. 일본만이 최고라는 국가주의가 세뇌되어 있었다.
김응교 선생님은 조선인 학살이라는 집단적 광기의 발단에는 계엄군이라는 국가의 묵인이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 당국은 지진으로 인해 정부로 향하는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을 조선인에게로 향하는 불안과 공포로 바꾸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국가적 폭력의 참혹한 사례이다.
‘15엔 50전’과 조센징 사냥
당시 간토에 살고 있었던 조선인들은 일본에 체류한 지 몇 년 안되는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일본어를 정확히 발음할 수 없었다.
“15엔 50전”
이 두개의 일본어 단어에는 일본어의 탁음이 들어있는데, 일본어에 서투른 한인들은 일본 본토 사람처럼 발음할 수 없었다.
“쥬우고엔 고쥬셴”이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추우코엔 코츄센”이라고 발음했다면,
총칼로 찔려 살해를 당했다.
조선인뿐만 아니라 이 발음을 할 수 없었던 말더듬이나 오사카, 오키나와 사람 등 지방 사람들도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살해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두고 ‘집단적 오락’(69쪽)이라고 표현한다. 이 광기의 오락의 다른 표현은 ‘조센징 사냥’이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시인 쓰보이 시게지(1898~1975)가 쓴 작품 『15엔 50전』 전문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간토대진재의 조선인 학살을 테마로 한 장 시로 김응교 선생님이 전문을 번역하여, 이 책에 실었다.
삭제되는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간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일본 학자들,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본 시민들
책의 <들어가며>에서 김응교 선생님은 “이 책은 반일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기원하는 책입니다.”라고 썼다.
이 책에서는 간토대진재의 기억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한일 두 나라의 연대를 위한 노력도 담고 있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자행한 만행의 기억을 삭제하려는 현 일본 정부의 노력에 맞서 이 기억들을 발굴하여 복원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가는 일본의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존재한다.
****
이 책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과 비슷했다. 이 책에는 김응교 선생님이 20여 년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현지를 답사하여 기록해온 간절한 증언이 담겨 있다. 이 증언들은 1923년 9월의 간토로 데려간다. 간토 대로변에서 불갈구리로 찔려 자기가 흘린 핏물 웅덩이에 쓰러진 조선인들과 치비치리 동굴 속에서 죽어간 오키나와 사람들은 계속하여 떠올린다.
김응교 선생님의 담담하게 쓰인 문장을 읽어가다 군데군데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벽돌들이 내 명치에 계속하여 쌓여가는 것 같았다. 이 참혹하고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복원하는 일본의 지식인들과 사비를 털어 추모비를 세우고 학살의 현장을 지키는 일본 시민들의 간절한 노력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러한 사람들의 수는 비록 적을지언정 그들의 존재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희망을 엿보았다.
이 책에서는 국가적 폭력으로 잔혹한 죽임을 당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나온다. 간토대진재에서 학살당한 조선인들, 1945년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학살당한 오키나와 민간인들. 국가적 폭력은 심지어 민간인들이 서로를 죽이도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수천 명의 조선인들과 수십수만의 일본인들의 죽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복원하여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무고한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무지한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총검으로 사람을 찌르는 사람만이 가해가 아니다. 우리의 거친 말들과 편견과 혐오에 사로잡힌 생각들은 타인을 해친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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