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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
  • 기억의 유령
  • W. G. 제발트
  • 18,000원 (10%1,000)
  • 2025-06-16
  • : 2,621
『기억의 유령』은 W.G. 제발트와의 인터뷰,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책이다. 이 책을 엮은 린 섀런 슈워츠는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이자 번역가로 그녀에 따르면 제발트는 '독창적인 데다 완성된 소설가로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났'다. 1994년 독일에서 태어난 제발트는 1988년도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출간했고 1990년에는 첫 산문픽션 『현기증. 감정들』을 출간했지만, 그의 문학이 영역본 출간된 것은 1996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인 린 섀런 슈워츠에게 제발트는 갑자기 나타난 천재처럼 인식되었을 것이다. 2001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제발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문학계에 큰 상실감을 주었다. 그는 산문픽션(제발트 자신은 '산문설화(prose narratives)'라는 용어를 썼다)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국내에서 『기억의 유령』은 같은 출판사인 아티초크에서 2023년 출간되었고 2025년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에서는 제발트의 소설 『현기증. 감정들』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작품인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와 제발트의 글쓰기 어록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옮긴 공진호 번역가의 옮긴이 후기가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다.


내가 제발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토성의 고리』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고 『토성의 고리』는 2023년도가 되어서 구입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티초크에서 나온 『기억의 유령』도 구입했다.

그즈음 나는 나치와 홀로코스트, 인간악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헤르타 뮐러, 에디트 에바 에거 등의 글을 구입해서 읽었고, 수용소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와 같은 독일인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한 것들을 찾아서 구입해 읽었다. 그리고 내가 늘 들여다보는 온라인 서재에서 하나같이 극찬하는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구입해서 읽었다.

『기억의 유령』 서문에서 슈워츠는 제발트의 『아우수터리츠』를 읽고 나서 느낀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서서히 자신을 잘게 부수는 땅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것이 바로 그런 가루들이다. 우리는 그런 상상에 마음이 동요되기는커녕 이상하게 기운을 얻는 기분이 든다. 우울하긴 하지만 진리가 주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
p44 <서문> 중, 린 섀런 슈워츠


진리가 주는 자양분. 나는 『토성의 고리』를 통해서 이러한 자양분을 얻었다. 인간은 인간을 수백만 명씩 학살하는 존재이다. 끔찍한 과오를 집단적으로 범하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망각하는 존재이다. 제발트는 그러한 인간들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들고선 기록으로 남긴다.



제발트의 소설 한 권과 인터뷰 및 평론집을 한 권을(구판과 개정판으로 두 번 읽었다) 읽은 나는 스스로를 '제발디언'이라 일컫는 문학 애호가들 집단에 끼워놓긴 조금 멋쩍다. 그러나 나는 제발트의 글을 감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젊은 청년 시절 독일에 살 때 제3제국 나치였던 교수들이 가까운 과거를 언급하지 않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떠나 영국에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를 좋아한다. 불면에 시달리면서 제발 그가 다른 민족이기를 아니 아예 이 세상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던 그에게 계속하여 마음이 간다.


" 망명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대체로 자신의 사회 계급과 환경으로 일대기를 형성해 가는 사람들과 달리, 난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순전한 우연에 내맡김을 의미한다. 이 운명이 이끄는 삶은 대부분의 경우 종국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으로 일반인의 이해력을 벗어난다. 제발트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구전 역사가 또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 전기 작가 같은 역할을 한다. 그의 책에서 멜랑콜리가 느껴진다면 이는 저자 스스로 짊어진 과업이 거의 희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264 <모의된 침묵> 중, 찰스 시믹(유고슬라비아 태생의 미국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번역가, 퓰리처상 수상자)



나는 제발트와 같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나와 과거의 세상에서 한 걸음 두 걸음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절벽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받은 충격이 평생토록 지속되는 느낌이다. 절벽에서 기어 나와 집에 돌아왔는데 내가 살던 집이 낯설게 보인다.

나의 안락하고 평범한 일상에는 얼마나 많은 죽은 자들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살아가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살아가는 내내 이 기억들을 읽어야 할 처지임을 깨달았다. 제발트의 글은 그것을 들려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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