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개가 왔다』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정이현 소설가의 산문집이다. 2022년 12월까지 개를 만지지 못했던 소설가는 얼떨결에 어린 개를 키우게 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책은 "어느 날 비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모험가이자 어설픈 분투기"이다. 부제를 붙인다면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어린 개를 키우기 전 '뭉클거리고 꿈틀거리는, 살아 있는 생명의 촉감'이 낯설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습관성 식물 킬러'였기에 본인의 두 딸 외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길러본 경험이 없다. 작가는 당시 수년 동안 출간을 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게다가 집안에 개가 들어오면 거의 십중팔구 개를 돌보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 된다.
그런데 두 딸과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어느 보호소에서 입양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개를 키우게 된다. 작가가 어린 개를 키우게 된 것은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생명체를 향한 보편적 인류애 때문이었다. 보호소 SNS에 올라와 있는 어린 개의 사진은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편 어린 개를 키우게 된 작가는 근심과 걱정에 휩싸인다. 작가는 그의 친구들이 농담처럼 던진 조언을 듣곤 이 조언을 따르기로 한다. 그래 기왕 개를 키우게 되었으니 써야겠다고. 작가는 제일 잘하는 것이 우선 책으로 지식(반려견을 키우는 방법 관련)을 최대한 흡수하는 한편 집에서 어린 개를 돌본다. 그리고 이것에 관하여 쓴다.
개가 왔다.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분명히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강아지가 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나는 상자 속의 어린 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어린 개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손보미 소설가가 이 책의 추천사에 책을 읽는 동안 "다섯 번 울고 열 번 소리 내어 웃었다"라고 썼는데 정말 공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구성원으로 거의 대부분 개가 있었던 가정에 살았다. 그래서 정이현 작가 어린 개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나 걱정하는 모습,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웃었다. 이 웃음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데 '엄마 미소' 비슷한 것이었다. 이토록 마음이 순수할 수 있을까. 분명 작가는 두 인간 아이를 길러낸 엄마이기도 한데 말이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고강도 돌봄 노동을 한 경험자인데 작가가 어린 개를 대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어느 날 밤 서재에 들어가기 전 거실의 불을 껐다가 너무 깜깜하면 얘가 혹시 화장실을 찾아가지 못할까 싶어 화장실 전등을 밝혔다. (...)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거실에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멀리 바둑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 내 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뚝 섰다. 바둑이와 나는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 선 채 각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어린 개 앞에서 그토록 조심스럽고 종종 당황해하는 모습은 작가 본인의 익숙한 인간 세계의 기준을 어린 개에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린 개가 어떻게 세상을 경험하는지 몰라서 배우려 한다. 훈련사에게 조언을 받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계속하여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어린 개의 시선으로 개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개의 일원'이지만 '개별개체 1 : 개별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한편 이 어린 개는 '루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루돌이와 작가는 점점 가까워진다. 루돌이의 삶을 거의 책임지고 있는 작가는 자연스레 루돌이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동물 등록증상의 견주가 작가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개가 주는 절대적인 사랑과 경의를 체험하게 된다. 작가는 루돌이의 사랑에 '종종 면구함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왜냐면 개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완전무결한 믿음과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인간에게는 결코 받을 수 없는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를 주는 존재가 바로 '개'라는 신기한 종이다. 작가는 개라는 종과 가까웠더라면 속이 더 따뜻하고 말캉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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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는 '엄마 미소'로 작가를 바라보았다고 썼지만, 문득 내가 감히 엄마 미소로 작가를 바라볼 자격이나 있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개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익숙했으므로 개를 처음 접하는 '정이현 작가'라는 사람이 인상 깊었다. 작가라는 사람들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분명 작가 중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순수하고 여린 결이 고운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소설가가 쓴 산문들을 최근 몇 권 읽었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무덤덤한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꼭 발견해 내고 그것을 써 내는 사람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이현 작가의 소설을 챙겨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쪼록 정이현 작가의 어린 개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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