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는 출판사 작가정신의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 향'의 열 번째 작품으로 젊은작가상 수상자인 최정나 소설가의 첫 중편소설이다.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은 '모두가 피해자를 자처하고 가해자는 없는 세계 폭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의 시작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주인공 로아가 병실에 누워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로아는 어느 날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아 병실에 입원했다. 로아는 아동학대를 비롯하여 학교폭력, 아동성추행 등 여러 학대의 피해자였다. 로아는 의식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학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로아는 이 시도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보기 위함이다. 로아는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로아는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는 방법으로 자신을 학대했던 가해자(그녀의 언니, 상은)가 되어보기로 한다. 로아는 상은의 눈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회상한다. 소설은 로아가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라고 말한 이후부터는 로아를 가혹하게 학대한 로아의 일곱 살 많은 언니 상은이 화자가 되어 전개된다.
열네 살 상은은 일곱 살 어린 동생 로아를 잔인하게 폭행한다. 아주 계획적이고 주도 면밀하게. 열네 살짜리 소녀 상은은 폭력이 주는 통제감과 쾌감을 순식간에 깨우친다.
상은은 왜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저자는 상은을 방치한 부모를 등장시킨다. 먼저 상은에겐 자신을 방치한 엄마 기주가 있다. 기주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빠져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엄마다. 기주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던 엄마이며 상은에게 가혹하게 폭행을 당해도 죽지 않기 위해 거짓 미소를 짓는 로아를 보고도 "태어나자마자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면서 얻은 생존법과 같은 거라고 기주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기주는 상은이 악다구니를 쓰고 날뛰어도 로아를 그 지경으로 폭행했어도 방치한다. 기주에게 엄마 역할은 용돈이나 쥐여주면 되는 것이다. 즉 돈을 쓰면 할 일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기주는 자기 연민에 빠져 위로가 필요할 땐 남자를 찾는다. 그런 엄마를 두고 상은은 "자신의 쾌락과 생명 유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생존을 이어갔다"라고 표현한다. 상은의 아빠는 한때 주목받은 신진 예술가로 거리의 풍경을 기록사진으로 남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은 군중이 모인 거리에서 발생한 다툼과 폭력을 찍었다. 상은의 아빠는 유서도 없이 다리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삶을 끝냈다. 상은은 아빠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던 그날 밤 아빠와 다투다가 그에게 "나가...... 나가 죽어버려!"라고 발작하듯 외쳤었다. 이 기억은 오로지 상은에게만 있는 것이고 엄마 기주는 왜 남편이 자살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상은은 아빠가 죽은 이유를 로아의 탓으로 돌린다. 상은은 "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내게 결핍을 주는 존재였지만 죽은 후에는 아니었다.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죽어서 내 것이 되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되어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라며 아빠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의 욕망에 맞게끔 편집하여 간직한다. 상은은 부모의 애정을 갈구했지만 받지 못했고 이 결핍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로아에게 돌린다. 상은은 결핍에서 시작되어 동생 로아를 때렸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폭력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쾌감과 통제력 권능감에 빠져든다. 상은은 폭력이라는 인간악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엄마 기주는 그런 딸 상은을 내버려둔다. 상은이 로아를 잔인하게 폭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둔다.
왜 이 세상에는 피해자만 있을까,
가해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로아의 언니 상은은 본인이 받았어야 했을 사랑을 로아 때문에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상은은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불안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상은은 본인이 느끼는 결핍과 불행의 원인을 로아에게 찾는다. 상은에겐 자신을 방치한 부모가 있다. 상은은 본인이 받았어야 할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했고 로아가 이를 빼었었다고 생각한다. 상은은 스스로 슬퍼하고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빌미로 동생 로아를 잔인하게 폭행하지만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상은은 스스로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니까.
이 소설을 다 읽으면 김이설 소설가의 말처럼 곧바로 소설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읽게 된다. 상은의 목소리와 로아의 목소리를 조금 더 예민하게 구분하면서 읽는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방치, 무관심, 용인 등에 대해 죄를 묻고 심판하는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인간악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나는 인간 동물의 본성에 기인한 폭력성에도 주목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로 들리는 목소리와 이로 인해 구성되는 우리 의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로아는 주로 어떤 목소리를 들었길래 때리면 맞고 살기 위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을까. 상은은 주로 어떤 목소리를 들었길래 인간 삶에 따라붙는 불행과 슬픔을 다른 사람에 전가했을까. 기주는 주로 어떤 목소리를 들었길래 그의 배에서 나온 두 딸을 그렇게 방치했을까. 우리 모두는 지금 주로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길래 이러한 폭력의 연쇄를 읽고 또 읽는 것일까.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