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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
  • 해부학자의 세계
  • 콜린 솔터
  • 25,200원 (10%1,400)
  • 2024-09-30
  • : 4,380


해부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부학 지식이 맨 처음 적용된 곳은 전쟁터였지만 그 이후로 점차 영적인 면을 띠게 되었다. 해부학 역사 초기에 학자들은 머리와 심장의 상대적 기능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영혼은 어디에 머물까? 이성의 자리는 어딜까? 심장이 머리를 지배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해부학자들이 해부학 이론에 있어 종교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와 고난이 필요했다. 중세 시대에 가톨릭교회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에스파냐의 불운한 해부학자 메겔 세르베트는 교회의 교리에 도전했다는 괘씸죄로 자신의 해부학 책과 함께 산 채로 불태워졌다. 과학이 교회와 국가에서 분리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에 이르러 근대 해부학이 탄생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는 외과의사뿐만 아니라 예술가들도 해부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공개 해부 시연에는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한 열정을 가진 예술가들도 참석했다. 예술가들은 심지어 해부 기술을 익혀 시신에 직접 칼을 대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열정은 해부학의 발전을 이끄는데 힘을 보탰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미술학교에도 해부학을 가르쳤다. 


예술과 해부학은 늘 공생 관계였다. 해부학 책에서 삽화는 텍스트만큼이나 훌륭하게 정보를 전달했다. 초기 이슬람 문헌부터 개별기관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해부도까지, 해부학은 인체의 안팎을 보여주기 위해 최신의 시각 기술을 이용했다. 필경사가 손으로 책을 필사하던 시절에는 목판화를 활용해 거칠긴 하지만 해부학 이미지를 책에 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석판화 기술이 발명되었고 섬세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후 사진술이 발명되어 해부도의 실재감이 향상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컬러 인쇄술이 발달되면서 더욱 정교해진 해부학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해부학자들이 신체기관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추구했다면 예술가들은 작품의 진실성을 갈구했다. 해부학자보다 뛰어난 관찰력을 발휘한 예술가들은 인체를 그리고 조각하는데 늘 매혹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두개골을 구입하기도 했고 인간의 몸을 직접 해부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미켈란젤로도 다빈치 못지않게 해부학을 파고든 예술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방대한 해부학적 지식은 설득력 있는 인체 묘사를 바탕으로 무수한 걸작을 남겼다. 


저자에 따르면 해부학의 역사는 인류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역사이다. 해부학은 인간의 한계를 밝힌다. 우리 각자는 몸 안에서 세밀하게 조정되며, 상호 의존하는 시스템의 섬세한 혼돈 가운데 발생 가능한 오작동의 위험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해부학을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아는 것과 같다. 



이 책은 기원전 3000년 저자 미상의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쓰인 외과 처치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2020년도의 『인체 해부학 및 생리학 컬러링북』까지 해부학 책 150여권을 망라하며 해부학 기록을 추적한다. 해부학 지식은 당대의 의학적 이해 수준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은 해부학 지식의 수요와 공급 양쪽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해부학 기록인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기원전 3000년경)은 주로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에 대한 치료법을 기술하고 있다. 이 파피루스는 인상 깊은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뇌의 여러 부위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와 연계된 삽화를 수록한 최초의 해부학이라고 주장하는 책 <전장에서의 외과 처치법>도 다친 병사를 치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또 최초의 내시경을 발명한 사람은 대프랑스 동맹 중에 외과의사로 복무한 필리프 보니치였다. 그는 칼을 대지 않고 인체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든 내시경을 발명하여 해부학에 변화를 일으켰다. 또한 오늘날 여전히 사용되지만 사람들의 입에 거의 오르지 않고 1994년 절판된 책도 있다. 에두아르트 페른코프의 <인체의 국소 해부학>은 1937년에 출간되었는데 당대까지 출간된 해부학 책 중 가장 훌륭한 삽화가 실려있었다. 그의 책에 실린 훌륭한 해부학 이미지는 나치 체제에서 사형당한 사람들의 몸이었다. 나치는 동성애자, 집시, 반체제 인사, 유대인을 학살하였고 그런 잔인한 죽음의 결과는 해부학 지식에 이용되었다. 


평소 우리는 몸속 안에 있는 장기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 모발 등은 늘 관찰과 염려의 대상이지만 심장이나 췌장, 위장, 폐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서 병원에 갔을 때 정도이다. 미국의 코미디언과 영국의 의학 작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의학의 발전에 기대어 안락한 일상을 누린다. 의학의 발전에는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병사들, 그들을 치료했던 의사들, 범죄자의 시신들, 해부학 시신이 돈이 되었기에 죽임을 당한 돈 없는 사람들, 온갖 학살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 인간의 신체에 매혹된 예술가들, 의학 지식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의사들, 해부학 책을 만들고 인쇄하고 배포한 사람들 등 무수히 많은 삶과 죽음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이 모든 사람들에 빚지고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해부학법은 영국의 악명 높은 계급 체계를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부유하고 권력 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을 내세우며 해부를 지지했다. 자신의 몸이 난도질당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시신은 가족이 장례조차 치러줄 수 없는 빈곤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해부학법의 예기치 않은 결과는 망자의 주검에 대한 굴욕스럽고 경멸적인 공개 해부를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만든 데 있었다. 해부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형벌이 아닌 가난한 죄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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