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물론 세상을 깊게 이해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꼭 읽어야 할 세계적인 시사 전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4년 9월호 중 특히 인상 깊게 읽었던 기사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커버스토리 Article de couverture
AI 디지털을 배회하는 공산주의 유령
2024년 9월 <르디플로> 커버스토리는 인공지능 패러다임의 상반되는 두 관점, 인공지능의 탄생 맥락,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회의, 앞으로 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모색한다.
이 글의 저자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산티아고 보이즈>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그의 팟캐스트 <센스 오브 리벨리언>를 통해 사이버네틱스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대서사를 CIA와 LSD 관계, 자본주의와 마오주의 관계 등을 통해 들려준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란 '인간 문명을 뒤바꿀 혁명적인 기술'이라기는 심상을 불러일으킨다기보단 벌써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귀에 너무나 익어버린 인공지능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이제 핵심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커버 기사에서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인공지능"을 계속 추진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인간 향상을 이를 수 있을까이다. 한편 여기서 '향상'이라는 단어를 흘려 읽으면 안 된다.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 패러다임을 두 가지의 관점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의 관점은 '인간 증강' 대 '인간 향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인간 향상'의 관점으로는 정신과 의사에서 사이버네틱스 전문가로 변신한 100세의 히피 워렌 브로디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다. 그는 AI 구축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중시했다. 정보 기술은 단순히 작업 처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참여하는 방법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보았다. 브로디는 사이버네틱 기기의 핵심 성질로 "반응성"을 내세웠는데, 이 "반응성"은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촉진하고 생태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브로디의 비전에서 기술은 우리의 취향을 풍부하게 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올려, 인간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브로디의 '인간 향상'의 반대되는 관점으로는 '인간 증강'이 있다. 이 관점은 건축가 네그로폰테의 견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견해는 브로디와 상당한 대조를 보인다. 브로디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변화와 끊임없는 혁신을 원한다고 가정한 반면, 네그로폰테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요구를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다. 즉 네그로폰테는 기발하고 독특한 기계를 만들어 기술이 생산성 향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그로폰테의 견해에 대한 우려는 기술이 인간만의 고유한 예술성이나 창의성 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가령 생성형 AI 기반 도구가 그린 그림의 창의성은 인간의 그것과 분간하기 어려운 경지로 올랐다.
요약하자면 '증강'은 효율성의 명목으로 인간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반면, '향상'은 인간 능력을 개발해 인간이 세상과 더 풍부한 상호작용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 패러다임과 관련된 두 견해를 보여준 뒤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전개한다. 먼저 인공지능의 탄생 배경과 전개 양상을 간략히 설명한 뒤 인공지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할 사이버네틱스의 거장 워렌 맥컬러를 소개한다. 인공지능은 1950년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군사 전략과 작전에 맞게 작업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저자는 기사에서 인공지능은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p16)고 말한다. 가장 비판적인 인공지능 옹호자들도 인공지능을 규제하고 억제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 이후 사회주의적 기술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포스트-AI 사회주의적 기출 정책의 주요 목표는 계층,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각 개인의 창의적 자율성을 키우고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여러 기관, 인프라,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를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교육 및 문화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일정 정도의 회의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포커스 기사
파룬궁의 아포칼립스 왕국
티모테 드 로글로드 기자가 작성한 포커스 기사는 파룬궁에 대해 다룬다. 이 글은 파룬궁 탄생과 전개에 대한 간략한 소개, 중국 정부의 탄압, 파룬궁 운동의 확장, 미국 정부와 의회의 제도적 지원을 받고 있는 현황 등을 소개한다.
파룬궁은 1950년대 중국 인민공화국과 함께 탄생했고 창시자는 리홍쯔(1951년생)이다. 파룬궁은 체조와 명상으로 이루어진 선조들의 수련법인 기공을 현대적으로 변경한 수행 방법이었다. 중국과 관계가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기공이 봉건적 미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이 박해를 받은 이유로 종교학 박사 마크 르브랑슈는 "중국 역사상 수많은 반란이 종말론 운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국 집권층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1999년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신도들도 체포당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 신도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체포, 사살, 장기적출이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은 여러 독립 기관들의 보고서에 뒷받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독립 단체들은 대부분 파룬궁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으며 이 기관의 회원은 대부분 파룬궁의 신도였거나 친 파룬궁 언론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로 파룬궁이 운동의 중심을 1990년대 말부터 뉴욕으로 옮긴 것, 파룬궁 뉴욕 본부에 속한 션윈 예술 단원단이 구호단체로 인정받아 세금 면제를 받고 있는 것, 자산 규모를 2억 2800만 달러로 신고한 것, 2019년 미 의회가 파룬궁을 지원하기 위해 약 48개 법안과 결의안을 제출한 사실 등이 있는데 꽤 인상 깊다.
부자들의 고독 VS 빈자들의 고독
사회학자 실뱅 보르디에가 쓴 글은 '고독'이라는 사회문제가 계급별로 다르게 전개됨을 보여준다. 서양 세계에서 고독은 특정 범주의 사람들이 갖는 문제로 인식된다. 이 특정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게 무능력하고 불행하다고 사전에 판단을 내리도 있으며 언론에서는 고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를 '다시 맺을' 가 있다고 말한다. 돈이나 직업, 학위, 거주지가 없고 경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이 없는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면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보잘것없는 해결책을 저자는 비판한다.
부자들의 고독과 빈자들의 고독은 다르다. 부자들은 자기 자신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고독을 선택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기 자신과 하는 열정적 대화로서의 고독은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해줌과 동시에 엘리트층이 동경하는 사연 상태로의 회귀라는 욕구도 충족시킨다. 유명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고독에는 돈, 시간, 신체, 지식, 주변인 등이 필요하다.
목수정 작가님의 글
Corée 코로나 기승... 에어컨 공화국의 여름 나기가 남긴 것
이번호 한국어 기사에 목수정 작가님의 글이 있어 리뷰를 남긴다. 목수정 작가님은 한국의 기록적이었던 여름 무더위와 파리 올림픽의 에어컨 관련 보도를 엮어 에어컨 공화국인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먼저 지난 파리 올림픽 선수촌의 에어컨 관련 국내 언론은 거의 대부분은 프랑스의 준비 부족을 비난했다. “폭염에도 ‘노 에어컨’… 선수만 고생, 파리 무슨 일” (KBS 8시 뉴스, 7월 10일 자) 등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 이것을 본 한국인들은 자동적으로 분노와 불만을 표출했다. 이 뉴스가 나온 날과 그 전날의 파리의 최고기온이 26도였던 것, 파리의 7월 한달 평균 최고 기온이 25.8도인 것, 전형적인 파리의 여름 날씨는 습하지 않고 보송하여 해가 쨍쨍한 낮에도 그늘 속은 시원한 것, 파리 아파트엔 대부분 에어컨이 없는 것,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는 것등은 쏙 빠졌다. 파리의 여름은 본격적으로 선선해지는 초가을 날씨와 비슷한 듯하다. 최고온도는 25도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오히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면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최악인 것은 보도하지 않았다.
목수정 작가는 올여름 한국의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를 보면서 에어컨 공화국인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강력한 에어컨 바람을 위해 빵빵하게 돌린 에어컨의 실외기는 도시 열섬 현상을 만드는 주범이다. 우리가 더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수록 열대야는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 열섬 현상을 만드는 주범이 바로 에어컨 실외기이기 때문이다.
목수정 작가는 지구 생태나 기후 위기에 대한 이슈에 무관심한 채 오로지 점점 더워지는 여름에 더 빵빵하게 에어컨을 트는 것으로 대처하는 한국의 대책을 비판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발달한 두뇌로 개발한 테크놀로지인 에어컨은 전기세라는 대가만 지불하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님을 깨닫는다. 바깥 온도가 35도라서 실내 온도를 19도에 맞추어 놓고 양복에 넥타이까지 메고 폭염 대책 논의 회의에 참석하는 사회 지도층의 이미지는 딱 우리의 수준을 말해준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성일권 박사가 2024년 9월호의 사설(Editorial)에서 쓴 것처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지식인은 물론 세상을 깊게 이해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꼭 읽어야 할 세계적인 시사 전문지이다. 2024년 8월 기준 27개 언어 36개 국제판으로 통틀어 200만 부가 발행되고 있는 이 〈르디플로〉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는 절대 읽을 수 없다. 논문을 읽듯이 촘촘하고 분석적으로 읽어야 할 텍스트이다.
앞으로도 <르디플로>를 읽어가면서 만나게 될 인물, 사상, 개념, 사회 현상, 역사적 사건 등을 인지적으로 편안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읽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더 커다랗게 만들고 싶다.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