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뚜렷해져간다. 당신이 생각나는 밤이다. 내가 당신과 헤어진 게 이맘때쯤이고 그날로부터 우리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닿았었을까. 착잡한 마음을 다잡고 시집을 들었다. 그것이 방수진 시인의 『한때 구름이었다』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그리움, 방랑 그리고 추락을 주제로 쓰여져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너의 일기장에 흘겨 쓴다 우리는 한때 구름이었다
질량은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고 하지만 충분히 넓고 가벼운 우주, 하나의 홀씨
- 雨연히
방수진 시인의 구름은 베이스캠프와 같다. 여행자들은 빗줄을 밧줄 삼아 먼 여정을 떠나고, 대지를 배회하다 구름이라는 둥지 속에서 찰나의 만남을 기약하는 삶. 그래서 그녀의 구름은, 어딘지 모르게 그립고 아련하다.
만남이 구름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이란 저 광활한 캔버스에서 잠깐의 점처럼 만나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번져가는 일. 그리하여 붓질이 끝나면 우리의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너무도 너무도 멀리 밀려갔기에.
진실로 외로워 본 자들은 알지
어둠이 어둡지 않다는 걸
너무나 밝고 환해서
한 번의 마주침으로도 시력을 잃기도 한다는 걸
- 가로등
길 가던 연인들을 보고 문득 떠올렸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감은 두 눈 위로 스며드는 하얀 이명들. 멀어버린 나의 마음아.
우리도 한 때 구름이었지. 당신은 지금 어디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