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왜곡되고 거짓 진리가 마치 참
진리인양 활개 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한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은 불 보듯 뻔하다.
배우는 것과
현실이 다르다.
신앙과 현실의
괴리감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당연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신앙과
현실의 어느 언저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불완전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던지고 있다.
그런데 그
위로의 말 한마디는 왜곡되고 곡해되었던 그래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던 수많은 신앙적 사유의 편린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있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을 바벨론 강가에 서
있는 자라고 했다.
그곳은 상실감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곳은 예배의 처소,
곧 성전이
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유배지가 아니라 사명의 땅이라고 재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저자의
본래 의도이며 부르심이었으리라.
불완전한 바벨론
강가를 배회하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그는 말을 건네고 있다.
아니 그 사명의
땅에서 진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저자는 신앙의 획일성과 맹목성을
경계하고 있다.
신앙의 한 쪽
면만을 강조하면 독단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서로의 다른
삶의 자리에서의 해석과 공감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의
해석과 공감을 존중해주면 상호비판과 보완을 통해 두 날개로 더 멀리 더 높게 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질문을 비신앙적으로 여기는 토양에서 살고 있다.
질문하지 않기에
더욱 더 맹목적인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더
배워야 한다.
더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더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안에서 얼마나 곡해되었는지를..
그래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맥락을 찾아 그 오해를 풀고 있다.
그리고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말씀의 실체를 하나하나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그 진리의
말씀으로 올바른 신앙과 신학이 정립되면 참된 제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원동력이 이에서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참된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다. 그들의 불완전한 삶은 잘못된 복음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때문이리라. 자신이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위로를 한 번 맛보라. 위로로 시작되어 참된 진리를 갈구하게 하여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실천하여 변혁하게 하는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