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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fort2님의 서재
  • 헤아려본 세월
  • 김민웅 외
  • 9,000원 (10%500)
  • 2015-04-16
  • : 238

304건의 슬픔 헤아리기

“헤아려 본 세월”을 읽고

 

    일본의 영화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2011년 어느 인터뷰에서 3.11 동일본 지진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이 있었다. 2만 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슬픔과 고통에 대한 심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1년 전 한 사람이 죽은 304건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한 가지 사건이 아니다. 304건의 사건이다. 한 사람이 깊은 슬픔을 당했을 때 그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표현 하곤 한다. 그렇다면 304개의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그뿐인가 한 사람의 슬픔은 그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깊은 슬픔을 당하고 있는 유가족을 향하여 ‘교통사고다. 이젠 그만해라 지겹다.’라며 독설을 내뱉는 것은 다시 한 번 304개의 하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를 304건의 슬픔으로 이해하고 헤아리는 11명의 필진들의 마음이 한 곳에 모였다. 신학자, 교사, 작가, 목회자 등으로 이루어진 필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세월호를 헤아리고 있다. 김회권 목사는 세월호 사건을 ‘갑오참변’, ‘양민수장학살사건’으로 규정한다. 다소 섬뜩한 표현이지만 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리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슬프고 참담하다. 김영봉 목사는 고난을 당하여 왜? 라고 묻는 이유는 이에 대한 정답을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절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난 당한 자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위로며 치유이다. 백소영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안한다. 슬픔과 분노를 공동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공동의례의 힘으로서 ‘세월절’을 제정하여 해마다 기억하자라는 것이다.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만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마다 애곡함으로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무례하기도 하고 서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전부인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가 전부이다. 하나가 모두이다. 그 전부를 되찾아 기뻐하는 우리를 꿈꾼다.”라고 김민웅 목사가 한 말은 슬픔을 잃어버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세상에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304건의 슬픔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제2의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제2의 세월호에서 침몰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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