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이 올리던 때 나는 초3이었다. 그때만해도 국민학생이었던 내게 올림픽은 오륜기와 굴렁쇠, 그리고 호돌이 마스코트로 기억된다. 서울에 살고 있고 서울을 궁금해하던 내게, 올림픽이라는 빅이벤트를 연결해 서울을 극장도시로 해석하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저자의 관점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식민과 분단,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무대. 군인들은 건전하고 근면한 배우들과 그럴싸하고 멋들어진 무대장치르 만들어 서울이라는 무대를 근사한 공연장으로 선보이고자 한다(군인들의 공연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본문) 연출가는 군인, 배우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확실하게 연기해내야 하는 사회구성원이 동원되고 무대는 서울에서 펼쳐진다. 연출가들은 이 거대한 보여주기식 이베트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질서를 도입하고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훈련했다. 어릴 때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보고 집에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 한 적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어른이 그런 말하면 잡혀간다고 나를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어찌나 강력하게 남았던지 사는 내내 드문드문 생각이 났다. 돌이켜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만해도 시대가 엄혹했다. 그런 시절이니 만큼 군인들에 의해 국민이 동원되고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훈련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서울올림픽은 군사정권의 의도대로 성공적으로 끝난 듯했다. 저자는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올림픽의 성공으로 "서울은 외국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채 과시와 연출이 일상인 극장도시로 재구성됐고 이로써 공연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질서가 본격화 됐다" 한국인은 늘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사회적 욕망을 대신 살아가며 그것을 자신의 욕망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나또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또한 88년 체제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올림픽은 사회적 차원의 욕망 투영이지만 개개인의 삶에도 뿌리내린 듯하다. 이외에도 밀려난 사람들이 ‘임대주택’이라는 형태로 정착하게 된 경위, 한강,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개발이 맞물려 일어나는 모습도 제시된다. "서울올림픽은 깨끗하게 정비된 극장도시 서울을 만들었고, 이후에도 서울은 도시적 삶의 모델이 됐다. 여기서 핵심은 공간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생활방식 역시 한국사회의 모델이 됐다는 데 있다. "
이 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이것이 의미를 가진다. "공연계약을 어떻게 사회계약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 책을 관통하는 이질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광장과도 연결돼 있다. 올림픽의 눈으로 만들어진 극장도시 서울에서 분열과 혐오의 도시를 넘어 관용과 상생의 중심으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서울에서 시작해 우리 삶의 문제로 이야기를 연결한다. "관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배우를 평가하는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사회 구성원의 삶의 무대를 지탱하는 리바이어던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등의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한국 현대사의 발전 모습, 연출가에 의한 한국인 내면화의 과정과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 등이 이 책은 올림픽과 극장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의미 깊다.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