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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em2님의 서재
  • 구해줘
  • 기욤 뮈소
  • 9,900원 (10%550)
  • 2006-07-31
  • : 15,795
한국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기욤뮈소를 처음 접했었다.
변요한의 얼굴을 제대로 각인한 작품이었고, 원래는 범고래였지만 스케일상 돌고래로 변경된 것,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구해줘"를 읽으며 같은 작가의 같은 필체와 같은 세계관을 느꼈다.
생명과 죽음과 사후세계에 던지는 질문들은 지난 수세기동안 저마다의 설명을
달았을 것이고, 식상하고 뻔한 것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특히 일이 잘 안풀릴 때 팔자와 연관지어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같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일들인데 사람들은 그 불안은 못이겨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카드를 고른다. 나 역시 그렇고.
소설의 막바지에 나도 생각해보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명활동의 특징들이 모두 사라지면 죽는 것 아닌가.
세포처럼 혹은 나의 예쁜꼬마선충들처럼 수없는 세포분열을 반복하다가 노화가 오고 종국에는 그 활동을 멈추는 것이 생활사이지 않은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사를 '인생'이라고 부를 때 단순한 생물학적 지식에 '영혼'이라던가, '운명'이라던거, 있는것 같긴한데 실체가 없고 입으로만 전해지는 그런 것들이 더해진 의미가 아닐까.

"구해줘"를 읽으며 유독 겹치는 영화가 있었다. "신과 함께"
똑같이 죽음의 사자들이 등장하고, 개입하지 않으려 하지만 개입하게 되고,
그들의 운명이 비극적으로 꼬여있고.
"구해줘"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신과 함께"를 보며 같은 열광을 느꼈을 것 같다.

비행기 추락 장면에서 제목의 의미를 십분 이해했다.
모두가 구해줘를 외치고 있었다. 천운을 얻은 이들, 혹은 아직 때가 아닌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살았다.
벤치에 묶여있는 조디의 장면에서도.
어쩌면 루텔리에게서도.
모든 개인은 태어나면서 절대 본인의 의지가 아니게 부재를 하나씩 안게되는것 같다.
사회가 그 부재를 강화시킬 수도 있고, 보듬어줄 수도 있다.
그것이 사회의 능력이고 실력이고.
또 한번 약하게 사회의 기능을 생각해보았다.

히가시노게이고만큼이나 글의 몰입력이 뛰어난 책이다.
80 페이지를 단숨에 읽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기 전에 마치고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른 작품도 왠지 비슷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을것 같아 기대가 조금 반감되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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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게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을 수도 있죠. 물론 그건 분명 자살과는 다른 거지만...

인간은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S.A. 키르케고르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를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우리를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필립 로스

과연 인간의 삶은 하나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삶이란 단지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신비로운 운명이 우리의 욕망이나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게
우리 인생의 실을 잣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틸드 아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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