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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em2님의 서재
  • 연애의 기억
  • 줄리언 반스
  • 13,500원 (10%750)
  • 2018-08-30
  • : 2,606
연애의 기억.
마지막까지 '연애'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절절한, 끝까지 내려가봤던,
'기억'하고 싶건 아니건 머리에 남아있는 사랑 이야기.
표지에 따듯한 햇살 한줄기도 들어오고 하길래 또래, 한 대학다닐 때즈음의
강렬한 사랑이야기가 흐를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책 초반에 테니스 복식 후에 차로 데려다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라기에 책 끝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다 하고 몇 장 안가 짧은 생각에 대해 후회했다.
어린, 아니 이제 갓 성인이 된 미숙아와 삶에 중심이 가족에서 조금은 벗어나도 될만큼 나이 든 중년 여성 사이의 사랑.
드라마와 영화로 학습되어 있었던 그런 뻔한 결말말고,
정말 박차고 나가서 행복하게 살았'읍'니다. 이런 결말을 기대했다.
이 또한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넘길수록, 중반, 후반, 결국 마지막으로 갈 수록 깊고 깊은 탄식과 후회가 밀려왔다.
말을 하는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요즘이지만 케이시 폴. 미웠다.
물론 그가 처한 상황, 정신차려보니 자기도 모르는 곳에 닿아있고,
그렇다고 노력을 안한것도 아니니 이 친구 탓만 할수는 없다.
수전도 헨리로드에서 '자신'을 실재할수 있게하는 활동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집에서 폴이 아침에 나간 그 문을 돌아올때 열리는 순간만 기다리지 말고..
그랬다면 상상하기 너무 힘들지만..그 무료한 시간, 두고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아주 잠시나마 그녀를 위해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안타깝다..많이..
여기서 또 한번 느낀다.
사랑이나 일이나..그 어떤 걸해도 '나'는 지켜야한다는것. 너무 빠지지 말아야한다는것.

p.114
"그랬지.그러니 이렇게 이상하게 칠을 한 마네킹을 직접 본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보다는 뉴스영화에서 그 사람을 본 사람들은 훨씬 많은 거야.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모습 그대로 비춰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처칠이 카퍼레이드를 하며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전 허옇게 분칠한 처칠의 모습을 보며 이질감을 느낀 케이시 폴이 이렇게 말한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 뿐만아니라 모두가 이러한 시선들, 남들이 보기에 좋은 모습,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모습으로 허옇게 분칠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내 얘기다. 사실 철마다 노동의 가치를, 땀의 무거움을 알 수 있는 제철알바도 하고 싶고, 내일 당장 떠나 형편 될 때까지 여행하다 오고 싶고.
그치만 착실하게 학교도 나가고, 취지자리도 알아보는 "착한 딸"의 모습에서 쉬이 벗어나질 못하겠다. 그리고 이런 나를 보며 안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보기 좋고 행복하다. 그러면서 나에게 또 괜찮다.얘기한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모습...칭찬...비난...
그들 한사람의 의견이고, 시선일 뿐이다. 입체적인 내 모습을 그 사람들이 서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로 치부하자. 난 코끼리고 그들은 내 다리만 본것이다.

p.116...남녀를 한데 묶는 것은 결혼이라기보다는 부동산의 공동 점유다. 집이나 아파트는 결혼증명서만큼이나 사람을 속이는 덫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그게 더 심하다. 부동산은 생활 방식을 선언하며, 그런 생활 방식의 지속을 은근히 고집한다. 부동산은 또 끊임없는 관심과 관리를 요구한다. 그것은 마치 그 안에 존재하는 결혼의 물리적 표현과 같다.
-오늘 문득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지칠대로 지친 사랑을 바라보는 것도 둘 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그냥 적당~히 맞고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이랑 만나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게 결혼인가 싶었다. TV에 나오는 예능처럼 매일 이벤트가 생기고 매일 서로에게 설렐 수 없다는건 자명하지만 노력은 끊임없이 하자. 그래. 적당~히라는 표현보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또 그가 힘들어하지 않는 선에서 항상 그, 그와 이룬 가정보다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
부동산과 결혼...안정된 환경에서 일꾼의 최대 효율을 뽑아내기 위한 제도와 정책..
이 세가지가 순환 고리에 있으니 씁쓸한데 제도까지는 괜찮다해도 부동산은,참,결혼의 온도를 낮춰도 너무 낮춘다.

p.132 "보다시피..너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지만...우리 가운데 일부는 삶에서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에 이르게 돼. 어떤 것도 좆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거기에서 생기는 몇 가지 부수적 혜택 가운데 하나가 십자말 풀이에 틀린 답을 채워 넣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거지.이미 지옥에 갔다 왔기 때문에 거기가 어떤 덴지 너무 잘 알거든."
-일맥상통하는 깨달음. '내'가 제일 중요하다. '나'를 사랑해야한다. 지금보다 조금만 덜 기대어보자.
사람은 정말 큰 일을 겪고 나면, 그 일에 온 마음을 다 써서 닳아버리면, 둥글어지면 덜 느끼게 되나보다. 나에게도 27년 인생 중 두번째로 큰 파도를 맞고 난 뒤가 성장의 변곡점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도. 충분히, 과도하게 넘치게 느끼다보니 그 다음 단계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의욕 상태였고, 그 다음인 지금은 덜 느끼게 되었다. 어떤 일에도 "그럴 수 있지." "그랬구나." 하고 넘기고 토를 달려하지 않는다.
딱 여기까지. 그러고나니 머릿속이 참 조용하다. 사실 내가 왈가왈부한다고 바뀔 일들은 거의 없으니까. 그냥 그 사람은 말을 하고 싶은거니까. 존경하는 정교수님께서도 범죄가 아닌 이상 이렇게 넘기는게 나에게 좋다고 하셨으니.
그런데 한편으론 겁도 난다. 이래도 되나 싶어서.
이렇게 덜 느끼다보니 자연스레 덜 신경쓰게 된다 주변에.
무책임해보이고, 관심없어 보이는 태도를 싫어하는데 내가 그렇게 된것 같은 자책.
더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더 해보지 뭐.

p.191 너는 사랑을 지지하는 절대주의자고, 따라서 결혼에 반대하는 절대주의자다...결혼은 개집이며, 그 안에는 자기 민족이 살고 있고 이것은 절대 사슬로 묶이지 않는다. 결혼은 연금술과 반대되는 어떤 신비한 기술에 의해 금,은,다이아몬드를 다시 저급한 금속,모조보석,석영으로 만드는 보석 상자다. 결혼은 사용하지 않는 보트 창고로, 그 안에는 바닥에 구멍이 나고 노 하나가 사라져 더는 물에 뜰 수 없는 낡은 이인용 카누가 들어 있다. 결혼은.....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 사랑은 어디 있는가.
-나중에 결혼 후 너무 안정된 삶에 무료할 때 읽어보려했는데..비극적인 후반만 읽어야겠다. 부동산에 이어 개집에 구멍난 카누라니. 다분히 케이시 폴의 주관적 관점이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 줏대 없어질 때 이 문구가 생각나지 않길. 결혼식 전날에도 물론!

p.252 너는 그녀의 행동이 그녀에 대한 네 사랑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너에 대한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떠오른다. 수전의 알콜중독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수전과 폴이 함께 만든 환경에 돌려야할 것 같다. 물론 폴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하고, 책임을 다분히 느끼고 있고 바쁘다. 그리고 여기서 수전을 위해 뭘 더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수전에게 또한 다른 취미를 가졌어야죠 그럼. 이라며 쏘아댈 수 없다. 그들이 전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면 결과가 다른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쯤부터였다. 이 소설이 우울의 고속도로를 탔다고 느낀 것이..

p...네가 그녀를 위해 더 해줄 게 없다고, 장례식에 가는 것 말고는. 그게 언제일지 몰라도....너는 사랑의 매는 그 매를 드는 사람에게도 매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사랑이 자라 꽃을 피우고, 잎이 거의 다 떨어져간다. 장례식이라는 단어로 그 꽃잎은 더 무겁고 빠르게 떨어진다.
사랑의 매. 들고 휘두른것도 맞는 것마냥 아픈가보다.
이 대목에서 언젠가 내 아이를 혼낼 때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다. 기억날 것 같다 이 구절.

p.263 "그 쪽은 환자분의...?" "대자입니다."
너의 대답은 자동적이다. 어쩌면 '조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쩌면 '하숙인(lodger)'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랬다면 적어도 거기에는 정확한 철자가 네개(lover)는 들어갔을 것이다."
-영국식 언어유희인가보다. 이 책에는 철자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꽤나 등장한다. 영국 문화가 잘 와닿지 않아 책이 더뎠다. 낯설고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아 어려웠다. 간접경험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이 책을 통해 아주 설게 느껴보았다.
사실은 제가 저 사람의 러버에요. 사랑하고 있는데 그냥 대자라고 할게요. 덜 복잡하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위아래로 훑을 시선,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냄으로써 몰려올 감정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마음이었을까.

p.322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속으로 자신보다 똑똑하게-감정적으로 똑똑하게-군 킴벌리에게 감사했다. 그는 수전과 함께 있으면서 감정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상상해왔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에 관한 감정교육에 국한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연애가 어려운 이유. 전 사람을 통해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느끼지만
새 연애에서 또 막히고, 어렵고, 전에 싸우지 않았던 이유로 싸우게 되고, 심지어는 이전 연애에서 상대와 나의 역할이 바뀌고..
다른 사람, 다른 세계를 만나는거니 당연한거지만 조금은 허탈하다.
나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고, 이대로면 이번 연애는 순탄하고, 갈등도 잘 해결할 수 있을것 같았는데..아니네.
오늘 본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그랬다. 와인 어렵지 않다고. 계속 마시다보면 나에게 맞는 와인을 찾게 된다고. 사람도 그런것 같다고. 이 뒤에 대사는 들은건지 내가 생각해낸건지 헷갈린다. 사람도 그런것 같다. 만나다보니까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많이 만나봐야한다는건 알지만 사람 만나는게 겁부터난다. 자꾸 무서운 생각이 먼저 든다.

p.327 한번 어떤 것들을 겪으면, 안으로 들어온 그들의 존재는 정말이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암소의 가스는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었다.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그러면 그냥 그 가스가 흩어질 때까지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한 명 이상의 여자친구가 옷을 가지러 달려갔다.
-암소의 가스를 무엇에 비유했을까. 나는 이 비유를 어디에 쓸까를 몇번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미 기억으로 자리잡은 그 시간들. 많이 흩어졌다. 이젠 슬프거나 아쉬워서 속상하거나 저릿하지 않으니까. 밖으로 뿜어낼만큼 뿜어냈나보다.
암소의 가스..흔적..기억..엔트로피.

p.328 전에는 부탄 사람들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부탄에는 물질주의가 거의 없고, 친족, 사회, 종교의 존재감이 강했다.반면 그는 물질주의적 서구에 살았는데 이곳은 종교가 거의 없고 사회와 가족의 존재감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덴마크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들이 갖고 있다고 하는 쾌락주의때문이 아니라,그들이 표현하는 희망의 수수함 때문이었다. 그들의 야망은 별과 달을 겨냥하는 대신 다음 가로등에 닿는 것에 불과했고, 거기에 이르면 만족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더 행복해졌다. 그는 다시 그 여자, 덜 실망할 것 같기 때문에 기대치를 낮추었다고 말한 누군가의 여자친구를 기억했다. 그래서 더 행복한가? 덴마크인으로 사는 것이 그런 것인가?
-요즘 내가 실천하고 있는 덜 느끼기도 덴마크식 행복추구 방법인 것 같다.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하지 않는다.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
작은 것에 감사하기. 그치 요며칠 가장 작은 것에 감사했던 일은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건강식과 식이조절에 대한 끈을 잠시 놓고 상황을 즐기니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편의점에서의 점심. 이 작은 것에 너무 감사했다.
내 몸과 마음이 길을 잃고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달려가기 바쁜 이미지를 경계한다, 코리안식 행복추구 방법인.

p.329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조사한 사람들이 믿을 만한 증인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행복한 것'이 정말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보고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 이 점에서는 이후의 어떤 객관적 분석-예를 들어, 뇌 활동의 분석-도 의미가 없다.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다.
-감정을 설명하거나 증명하거나 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얘기했다. 나는 행복해! 왜냐면~등의 이유를 달 수 있겠지만 행복하다는데 행복하다는 말 이외에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이 지점에서 세로토닌의 농도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p.330 그의 인생 동안 그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서 양성의 한 가지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남녀가 헤어졌을 때 여자는 "x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모든 게 좋았는데"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았다. x 사건은 환경이나 장소의 변화일 수도 있고,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아주 흔하게, 어떤 판에 박힌-또는 그렇게 판에 박힌 것은 아닌-부정일 수도 있고,
반면 남자는 "안됐지만 처음부터 다 잘못된 거였어"하고 말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서로 맞지 않음, 또는 강제로 한 결혼, 또는 나중에야 드러난, 한쪽이나 양쪽의 비밀을 말하곤 했다. 따라서 여자는 "우리는 그 전까지는 행복했는데"라고 말하는 반면, 남자는 "우리는 진짜로 행복했던 적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이런 어긋남에 주목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높은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인생의 건너편 끝에 이르러, 그는 둘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남녀의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별에 관한 얘기를 하다 글 속 여자와 같은 말을 했음에 흠칫 놀랐다. 그래. 우린 그 사건 전까지는 결코 이별이란 재앙이 일어날지 꿈에도 몰랐다. 그 때까진 정말 모든게 좋았다. 근데 상대는 아니었을 수 있겠다라는걸 우린 너무 늦게 깨달았다..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친구의 한마디.
"여름 다음에 가을 오고, 가을 가면 겨울 오는건 당연한건데.
어쩌면 (변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되는데) 그 애가 떠나는 것도 당연한건데 나한테만 갑작스러웠다."

p.336-339 그녀는 오래전에 술을 끊었다. 사실은, 술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네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존재라는 것, 또는 어떤 존재였다는 것은 아는 듯 하지만, 자신이 한 때 너를 사랑했고, 또 너도 그에 반응하여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녀의 뇌는 너덜너덜하지만, 묘하게도 기분은 안정되어 있다. 공황과 극악한 혼란은 다 쏟아져 나갔다. 네가 도착해도 네가 떠나도 놀라지 않는다...그러면서도 어떤 수준에서는 네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에 반응한다는 것. 그녀는 네가 씨발 누구인지, 네가 뭘하는지, 심지어 너의 좆같은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동시에, 너를 알아보고, 너를 도덕적으로 심판하고,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수전의 방에 폴이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었는지, 수전의 신경세포가 폴을 기억하기 위해 연결했던 그 많은 가지들은 알콜에 의해 가지치기가 난도질 하였음에도 남아있었구나. 너무 힘들어서 의지할 다른 무언갈 찾다가 자신을 놓아버린 흐름. 미친 세상을 미쳐서 대응하는 그녀. 얼마나 힘들었을까..

p.352 안 그런가? 사물이란, 한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가 없다. 이제 그는 그것을 알았다. 한번 날린 주먹은 거두어들일 수 없다. 한번 뱉은 말은 도로 삼킬 수 없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듯,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 계속 살아갈 수는 있다. 그걸 다 잊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깊은 핵은 잊지 않는다.
-그 핵이 수전에게는 폴, 폴에게는 수전. 누군가의 핵이 된다는 것, 혹은 다른 핵을 찾아 제 1전자 정도가 되어 핵 주변을 빙빙 돈다는 것. 뇌 활동 한참 활발한 청년기의 사랑은 그 자리를 차지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청자의 마음에서 언제고 둥둥 떠다닐 말.
조심해야겠다고 또 한번 느낀다.

p.358 "모험성은 스물다섯 살쯤 되어야 안정된다고들 하더라고요."
이 발언 때문에 그는 더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 그는 생각했다. 방심할 수 없는 경주로, 물살 때문에 거의 영으로 떨어진 가시도, 나는 불사신이라고 느끼는데 남들은 소심한 상태, 아직 안정되지 않은 모험성 덕분에 죽어라 나아가는 것.그래. 그 모든 것을 너무도 잘 기억했다. 그것은 열아홉 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사고가 나고 일부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수전을 사랑한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후회한 것은 자신이 너무 어렸고, 너무 무지했고, 너무 절대주의자였고, 자신이 사랑의 본질이자 작용이라고 상상한 것에 너무 자신만만하다는 점이었다.
-열아홉부터 스물 중반까지. 나 또한 참 무지했고, 용감했고, 폭력적이고, 생각이 짧았고, 부족했다 창피할 정도로. 연애와 사랑 뿐만아니라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내 나름대로 정의하고 주장을 전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은 들으려하지도 생각해보려하지 않은 것은 잘못되었다.
x 사건 이후에 나는 정말 많이 컸고, 덜 폭력적이게 되었고, 말하는건 점점 어려워지고, 아직도 부족하고 창피하다. 세상을 통달하기엔 스물 여덟이면 아직 한참 젊은거니 어제보다 오늘 덜 창피해지도록 살아야징.

p... 나이가 들면서 그의 삶은 쾌적한 일상으로 바뀌어, 그를 지탱해주고 기분을 풀어주되 방해는 하지 않을 만큼의 인간 접촉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는 덜 느끼는 것의 만족을 알고 있었다...그는 자제와 평정을 소중하게 여겼으며..
-덜 느끼기. 난 이 나이에 단 한 번의 그 사건으로 깨달은 것인가.
감정도 정말 충분히 쓰고 나면 많이 배우는구나를 느낀다.
연애를 감정소모라 부르던 입버릇들. 지금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평정.
너무 적응되지 않기를..감정소모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길..

p.367 "내 의견으로는, 모든 사랑은, 행복하든 불행하든, 일단 거기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게 되면 진짜 재난이 된다." 그래. 그것은 여기 그대로 남아 있을 자격이 있었다...이것은 사랑의 최대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이 말한 사랑에 관한 진실이었으며, 여기에는 삶의 슬픔이 모조리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헨리로드에서 술을 들이키던 수전을 보며 느꼈던 것이다. 실제로 이별로부터 깨달은 것과 상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잃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하지...그러려면 직장이든 가정이든 사랑이든 한 발치 떨어져있어야하지 않을까. 너무 매몰되지 않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잊지 말자. 자기 객관화. 이보다 좀 쉽게 말해보면..음..관찰자 시점? 아니면 뒷짐지고 바라보기?

책의 결말은 결국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대는 가시밭길에서 마무리되었다.
여자는 망가졌고, 아니 어쩌면 그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뇌는 작동했고,
남자는 두려움 많은 채 회피형으로 늙어간다. 서로 다른 곳에서.
씁쓸하다. 이런 맛을 남기는 책이었다. 함께 구매한 "바깥은 여름"과 참 여러모로 비슷한 감정이 들고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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