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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주님의 서재
  • 폴링 인 폴
  • 백수린
  • 15,300원 (10%850)
  • 2024-02-29
  • : 4,870
...그러므로, 친구들이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사소한 차이들을 결코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여기, 우리의 대화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는 게 꼭 물속을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노라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로운데 힘겹게 발걸음을 떼야만 하는 날들이 너무 많았노라고. 두 발을 떼면 몸이 떠오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자칫 바닥에 가라앉으면 영원히 잠들고 말 것 같아 뒤뚱뒤뚱 물속을 걷는 꼴이 우습게 여겨지는 날들이 많았노라고. 그래서 바다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말했다. 네가 같이 간다고 하지 않았다면 바다 같은 데 오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수많은 취객들 사이에 마주앉아,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내게 실연을 안겨준 그가 더이상 원망스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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