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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주님의 서재
  • 기울어진 문해력
  • 조병영
  • 17,820원 (10%990)
  • 2025-01-17
  • : 4,191
...지금 우리는 마이크로 프로파간다 시대, 거짓말이 초미세먼지 수준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적 현대의 거짓말은 생각보다 체계적이다. 거짓말로 사소한 권력을 지탱하는 자들은 거짓말들 사이의 정합성을 마련하고, 거짓이 삶의 원리와 규범이 되는 그럴듯한 허구 세계를 축조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들 세계에서 아무 탈 없이 편히 살고 있다는 ‘착시’를 주사하려 한다. 이런 시대에 환각과 사실, 참과 거짓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우리가 진실로 거짓된 것들을 가리고 도려내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 없이 이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문해력은 세상과 자신의 기울어짐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섬세한 의식에 도달하여 작동하는 자잘하면서도 굳건하며, 질기면서도 탄력적인 ‘생각의 근육’으로 완성된다. 글과 사람, 세상은 기울어질 수 있을지언정 문해력은 결코 기울어질 수 없다. 문제는 기울어지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력이다.
 



...지식의 역설이란 이런 것이다. 지식은 글 읽기에 필수적이지만, 그 지식이 글 읽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지식이 많고 구체적이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지식이 왜곡되어 있거나 지식의 활용법이 적절하지 못하면 그것은 오히려 정확한 글 읽기, 명민한 분석과 합리적인 해석을 방해한다. 아예 지식이 부족하거나 결핍되면 두말할 것 없이 글 읽기는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난제가 된다.




...직관적 사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직관적 사고에도 치밀한 근거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읽고 보고 듣는 것의 전체를 잘게 썰어 근거와 주장을 살피고, 이 둘을 접착시켜 보이지 않는 전제와 가정을 따져보는 분석적 사고가 필요하다.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가 균형을 이루면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하는 것’을 통합하여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 글도 도마에 놓고 착착 썰어 이해하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관해 AI의 글을 읽을 때,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대단히 난감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번지르르한 기계의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인식의 한계 바깥쪽에서 충분히 우리는 기계에 농락당할 수 있다.
공상과학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숨』을 펴낸 테드 창은 챗GPT가 “인터넷을 복사한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 파일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인공지능이 마치 새로운 무언가를 창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은 인터넷에 흩뿌려진 데이터를 긁어모아 한데 놓고 찍어놓은 조잡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산에서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 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리가 길어야 한다. 잠언은 봉우리여야 하고, 봉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집이 크고 키가 껑충 큰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텍스트로써 사람과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며 세상을 감각하고 변화시키는 것, 그것은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크게 읽고 크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크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맥락을 읽고 의미를 만드는 사람,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타자와 함께하는 사람, 평범하지만 특별한 세상 지식과 소통 의지로 명랑하게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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