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겨울의 언어
cj 2025/04/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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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언어
- 김겨울
- 16,650원 (10%↓
920) - 2023-11-10
: 11,886
...나와 다른 이가 비록 그 경험은 다를지라도 각자의 고통을 겪었음을 알게 될 때, 그래서 시집을 붙잡고 울 때, 그 열띤 고통은 잠시나마 진정된다. 시인의 단어들로 시의 몸이 되어본다. “내게 칼을 겨눈 그들은 내 영혼의 한 터럭도 건드리지 못했어.”소리 내어 읽어본다...그러니까 늘 꿈꾸다 말고 마시는 자리끼처럼 나는 시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악몽과 꿈 사이에 청량한 물을 흐르게 하고, 꿈이 혈관에 스며들게 해서, 그토록 땀 흘리며 삼키던 열도 잠시 내려놓게 하는 것. 대체 이것을, 시가 아니면 무엇이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속에서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 누구든지 태어나서 해볼 수 있는 경험보다 해보지 못하는 경험이 까마득하게 많기에 우리는 함께 있을 때만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함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혹은 예술만이 서로의 연장延長이 된다.
...책 300페이지를 읽는 일. 40분짜리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일.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일. 미술관 내부를 아주 천천히 걷는 일. 그러는 동안 나의 편견과 아집을 내려놓고 마음을 활짝 열어두는 일. 그럴 때 왠지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낀다. 표현하고 경청해온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한 발짝씩 다가선다고 느낀다. 이 바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이란 진화에 불리한 성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인내심이 없다면 내가 꿈꾸는 다정한 사람들의 세계는 그 꿈의 흔적조차 파르르하게 사라질까 두렵다.
...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이행해가는 그 모든 과정에서 ‘읽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연속적인 열린 과정만이 책의 경이를 담보한다. 그는 책과 책을 거치며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더 넓은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단순한 ‘갈아타기’가 아니라 인간의 애석한 운명을 넘어 다른 이의 몸을 입어가는 ‘확장하기’의 과정이다. 그리고 ‘확장’은 필연적으로 홀로 성공하기보다 여러 삶을 끌어안기를 요청한다. 그렇기에 동일하게 맞부딪히는 주문 속에서 “인간이라면 모두를 제치고 성공하라”라는 주문은 유일하게 힘을 잃는 주문이 된다.
...죽음을 맞이할 때는 아침의 찬 바람이 깨운 서늘하고 명징한 정신이었으면 한다. 매일같이 축하한 작은 부활의 순간처럼 날카로웠으면 한다. 죽음 앞에서마저 미몽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으면 한다. 무너지게 될까. 포기하게 될까. 신체의 고통 앞에서 다른 것은 모두 부질없어지게 될까. 나는 이토록 허약한데.
...삶에는 의미가 없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과제로 부과되어 있기에, 한 가지 답이 없기에 삶이란 피곤한 것이라고. 삶은 우리와 합의를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삶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기에 합의에 응해주지 않을 것이다. 삶은 인간에게 마음대로 통제되고 라벨이 붙을 만큼 약하지 않다. 삶은 혼돈이고, 무질서는 승리하며, 성취는 무너진다. 삶은 인간의 자존감이 편안히 기댈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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