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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주님의 서재
  • 단어가 품은 세계
  • 황선엽
  • 16,200원 (10%900)
  • 2024-11-22
  • : 33,210



...그런데 영어 subscription에는 정기구독 외에도 정기적으로 내는 회비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subscription economy가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구독경제라고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입니다. 물론 subscription economy에 대한 마땅한 번역어가 없고 이미 구독경제나 가전제품 구독 같은 표현이 너무 일반화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단어의 의미 변화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어 기성세대의 거부감과 당혹감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미가 안착하게 되지요.



...돼지와 고양이는 원래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성체를 뜻하는 말로 변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돼지와 고양이가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다면 성체를 뜻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전 사람들은 돼지를 돝이라 하였고 고양이는 괴라고 하였습니다.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에 유추하여 비슷한 형태로 변화하지요. 버들강아지와 강아지풀도 이러한 경우라 생각됩니다.  15세기에는 가야지란 말이 강아지의 의미로 쓰인 예가 없어 버들가야지의 가야지가 강아지와는 관련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근대국어 시기에는 가야지와 발음이 거의 유사한 개야지나 개아지가 강아지의 의미로 쓰였지요. 사람들은 흩날리는 하얀 버드나무 씨를 버들가야지라고 부르다가 당시 강아지를 뜻하는 말로 함께 쓰이던 개야지, 개아지, 개지를 연상하게 되었고, 버들강아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버들가야지가 버들강아지로 바뀐 것은 가라지가 강아지풀로 바뀌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이것을 언어학에서는 과도 교정(hypercorrection)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과도 교정의 결과로 사투리로 오인된 짐치가 김치로 바뀌게 된 것이지요. 즉 구개음화 및 모음의 변화, 또 구개음화에 따른 과도 교정의 결과로 딤ᄎᆡ가 김치가 되어 그 원형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상의 설명은 어미, 아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어미, 아비는 기원적으로 ‘엄, 압’이었고 여기에 접미사 ㅣ가 나중에 붙은 말입니다. ‘엄, 압’에 접미사 ‘ㅣ’가 결합하여 어미, 아비가 되었어도 관형격과 호격에서는 ‘엄, 압’의 형태가 여전히 쓰이고 있었으므로 15세기에는 ‘어믜, 아븨, 어마, 아바’라는 형태로 실현이 되었지요. 그러다 현대국어로 오면서 관형격에서는 더 이상 ‘엄, 압’이 쓰이지 않게 되었고 호격에서만 나타나게 되었는데 형태까지 변해서 엄마, 아빠가 되었고 급기야는 이것이 호격만이 아니라 단독 명사로까지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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