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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주님의 서재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 7,200원 (10%400)
  • 2002-01-20
  • : 71,107

...만약 내가 서조(鼠蚤)나 침팬지한테 물어보았더라도, 지금 이 정도로는 만족해 있을 것이고, 지금 이 정도로는 영리해 있을 것이며, 지금 이 정도로는 유익하였을 거야. 오 고빈다,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라면, 만약 그렇다면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당신을 본받는 일을,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을, 그리고 승려들의 교단을 저의 자아로 만들어, 저의 자아가 오로지 겉모습으로만, 오로지 거짓으로만 안식에 이르거나 해탈을 얻을 뿐, 실제로는 저의 자아가 계속 살아남고 커지는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야, 카말라, 바람에 나부껴 공중에서 이리저리 빙빙 돌며 흩날리다가 나풀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존재야. 그러나 얼마 안 되는 숫자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 같은 존재로서, 고정불변의 궤도를 따라서 걸으며, 어떤 바람도 그들에게 다다르지는 못하지.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그들 나름의 법칙과 궤도를 지니고 있지.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강이었어요. 당신도 강으로부터 그것을 배우게 될 거예요. 그 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우리는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보세요, 당신도 이미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부유하고 고귀한 신분의 싯다르타가 노 젓는 천한 사람이 되리라, 학식 높은 바라문인 싯다르타가 뱃사공이 되리라, 이러한 것도 강이 당신에게 들려준 말이지요. 당신은 다른 것도 강으로부터 배우게 될 거예요.





...친애하는 친구여, 이러한 길이 어느 누구한테는 혹시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제발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혹시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그들의 모든 욕정들과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바로 생명, 그 생동하는 것, 그 불멸의 것, 범(梵)을 보았다. 그런 인간들은 바로 그들의 맹목적인 성실성, 맹목적인 강력함과 끈질김으로 인하여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지식인이자 사색가인 자기가 그들보다 앞선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미하고 사소한 그 한 가지란 것은 바로 그 의식, 즉 모든 생명의 단일성을 의식하는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 강에, 이 수천 가지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 두거나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특정한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 소리들을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




...“누군가 구도를 할 경우에는.”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스님, 당신은 어쩌면 실제로 구도자일 수도 있겠군요.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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