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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주님의 서재
  •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이호
  • 16,650원 (10%920)
  • 2024-12-23
  • : 25,33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 다 죽어가는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새순도, 갓 태어난 아기도 계속 늙어가고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무엇도 더 젊어지는 것은 없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삶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다.



...문자를 남긴다는 것은 말을 남긴다는 것이다. 종이가 없던 먼 옛날에는 점토판에 쓰고, 두루마리에 쓰고, 그다음엔 양피지에 썼다. 양의 가죽을 가공해 만드는 양피지는 당연히 아주 고가의 재료였고,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 마리가 넘는 양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양피지에 글을 쓰는 시대였다면, 그 많은 양들이 희생되면서까지 나의 글이 가치가 있는가 하고 주저했을 것이다...책을 쓴다는 것은 동물들과 나무들의 희생을 무릅쓸 만큼의 가치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독자들의 시간의 가치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지게 된다. 얼마 전, 공군 내 성추행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고故 이예람 중사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법이 바뀌었으면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때 바뀐 법 때문에 살았다고 말해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사실 어려운 일이다. 병문안을 가거나 조문을 갔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론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는 것, 그 정도가 좋겠다 싶다. 간혹 옆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그동안의 기억을 자꾸 잊으라고 할 때가 있다. 그만 잊고 떠나보내라고 그런데 가까운 이는 그 사람의 경험이 내 몸에 체화돼 있다. 그 존재가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빨리 잊어라’ 그렇게 종용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내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본다면, 인간 세상이나 생로병사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삶,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다만 언제 죽을지를 알 수 없을 뿐. 불확실한 죽음의 달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것. 단 나를 둘러싼 것들에 관대할 것’이다. 사는 동안 내 삶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나의 죽음’이라는 말은 언어의 역설이다. 죽음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내 것 되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존재하는 이상 죽음은 결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오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 버티는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불안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즉 죽음을 수용한 상태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해가 뜨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출근하듯이,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듯이. 때가 되면 태연히 삶을 끝내고 갈 뿐이다.




...휘발유 차에 몰래 경유를 넣으면 절대 차가 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어도 갈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 바로 마음의 힘이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플라세보다. 약의 효과를 판별하기 위해 플라세보, 즉 위약 효과를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건 역으로 위약 효과가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정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들의 필요에 맞추면서 더 편해졌다. 그들의 필요 덕분에 지하철에 에스컬레이터가 생겼고,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졌으며, 버스 바닥이 높이를 낮췄고, 좌석 간격도 더 넓어졌다. 온갖 비난을 들으며 힘든 투쟁을 한 것은 장애인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달콤한 수혜를 맛본 것은 그들을 비난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득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데도 그들이 우리의 것을 뺏어간다는 생각이 옳은지 묻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날 교수님 강의를 듣고는 기존 학생들과의 갈등으로 속상해 있던 친구들이 울먹이던 게 기억난다.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강의였기 때문이다. 그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남긴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뭇잎은 바람에 흩날려도 서로 간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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