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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의 책장
  • 어른의 이별
  • 박동숙
  • 12,600원 (10%700)
  • 2017-09-22
  • : 226




그 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입추가 왔고 말복이 왔으며 처서도 지나가고 이제 우렛소리가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추분이 찾아 온다.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샤워를 하고 돌아가는 선풍기소리를 친구삼아 맥주를 마셔도 외롭지 않을 열기와 젊음의 계절인 여름이 지나가고 나니 녹음도 힘을 잃고 내 피부도 수분을 잃어 가니 애써 감춰 두었던 내 외로움이란 친구가 자꾸만 얼굴을 들이민다.


잘 읽지 않던 연애소설과 에세이가 눈에 들어오고 감성을 후벼파는 문장 하나 하나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연애를 한지도 너무 오래되어서, 가뭄에 쩍 갈라진 논바닥 마냥 왠만한 폭우가 쏟아내리지 않는 한 그 갈라짐의 골을 메우기는 힘들어 보였는데...더이상의 모발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죽은 두피의 모공처럼 내 연애세포도 복구불가한 것처럼 보였는데..





매일밤 10~12시,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의 박동숙 작가가 러브 어페어란 코너를 통해 청취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준 사랑이야기 136편을 묶어낸 에세이집 '어른의 이별'을 읽으면서 그랬다.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고단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아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립기도 하고 그 '사랑'이란걸 다시 해봐도 좋지 않을까?란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오로지 사랑예찬서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어떤 '이별'이 아름다운 이별인지, 어른의 이별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럽고 예의바르며 유치하지 않는 이별이란게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별이야기만 주구장창하니 사랑이란게 무서워지고 질리는게 아니라 그녀의 조언을 무기삼아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사랑 한 번 해보고 싶다란 생각이 자꾸만 드니 정말 희한한 책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사랑은

반드시 결실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거였어.

사랑은 우리를 통과해가면서,

우리를 웃게 하고,울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


다정한 기억과 울고 난 뒤의 맑은 눈을 남겨주는 것,

그러니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p41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는' 중에서 )






그녀의 프롤로그를 보면 매일매일 무언가를 써내야하는 라디오 작가의 운명을 아르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에 비유한다.

천일동안 매일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목숨을 부지하고 사랑을 얻은 그녀,그 천일의 시간은 배신당한 왕비로 인해 폭군이 되어버린 왕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그리고 매일 밤 사랑이야기를 써왔던 작가에게도 고마운 회복의 시간이였다고 말한다.그리고 이 책은 나의,우리들의 아픈 이별을 보듬어주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해주는 치유서이기도 하다.


사랑을 시작할때의 기쁨과 행복,처음으로 연인과 다투게 되었을때의 충격과 뒤이은 안정감,작은 습관들과 몸짓에서 보여지는 이별의 징조,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별 뒤 연이어 찾아오는 자책과 ,상대에게 느껴지는 미움과 미안함의 두 마음,그리고 그 긴시간을 지름길로 가지 않고 아픔과 고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후 헤어지는 상대에게 조차 고마움과 응원을 보내고 결국 각자의 길로 들어서 새로운 사랑에 대한 설레임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다보니 그녀도 그랬구나.나만 그런게 아니였어.그래 사는게 별거야? 사랑하고 이별하는게 별거야? 그녀의 말처럼 그건 과거의 나,어제의 나였는데...내일의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몰라.



이별을 실패하고 단정하지 마.

이별은 그저 사랑이 끝난 상태일 뿐이야.

한 방에 있던 두 마음이

그 방을 나오며 불을 껐다고 생각해.

                                     (p90 '이제 그 방의 불을 끄고 나오렴' 중에서)


아프고 지쳐 마음의 문을 닫았던 나를 보듬어주고 후회와 자책으로 스스로 내몰아버린 내 자신과의 화해도 시도해 보게되며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길 살포시 기대도 해보게 만들어주는 사랑 주술서 같기도 하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 누군가의 연애사를 들어주고,실연당한 이를 위로해 주며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것,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일이라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어른의 이별'엔 수만가지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담겨 있다.전직 연애칼럼리스트답게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접하고 경험한 덕에 후회와 나쁜 기억뿐이여서 뭉뚱거려 구석에 쳐박아둔 흑백의 내 사랑에도 아름다운 색칠을 해줄 수 있게 되어 그게 참 좋았다.

한 편의 시처럼 쓰인 그녀의 글들에 나의 옛 기억들을 소환하고 대입하다보니 정말 죽은 연애세포가 되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더 좋았을껄하고 후회되는 기억들도 많았지만  앞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녀의 조언처럼 해봐야지 하며 그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새겨 읽어 보았다.

몇 장을 남기고서 다 읽어버린 것이 아깝다...느껴졌던 건,그녀의 얘기지만 또한 내 얘기 같아서였다.



차라리 상처받는 게 나았을까?

아프고 힘들었더라면

성숙해질 기회라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상처받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란 걸.

상처받지 못하는 게 정말 부끄러운 거란 걸.

                                                                          (p224 '그런 소문을 들었어' 중에서 )



매미소리 대신 귀뚜라미가 그 자릴 채우고 뜨거운 열기대신 스산한 찬공기가 스며드는 이 가을에 오래된 사랑의 감정을 일깨워 주고 내 사랑과 이별들이 타인과 다르지 않음을. 그 선택과 결과들도 더 못난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읽다보니 '어른의 이별'은  연인과의 사랑얘기에만 최적화된 책은 아니다. 살아감에 있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헤어지며 그 헤어짐에 있어 어떻게 헤어져야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인생도 굽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오래오래 남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날 쓴 글이 그날 허공으로 흩어지는 라디오 작가가 되었고 오랜 시간 라디오 작가를 하며 깨달은 건 세상에 생겨난 것 중 의미 없이 사라지는 건 하나도 없고 사랑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공중으로 흩어져 버릴 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겨주어 가슴의 온도를 몇 도 올려주었으며 자신과 타인,주위의 것들,일상의 모든 것들에 눈과 귀를 기울인 따듯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작가에게 감사하며 마지막 책 장을 넘긴 그 아쉬움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달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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