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EWAYS TO ART
이봄에서 펴낸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이봄에서 최근 출간한 미술서 『게이트웨이 미술사』의 샘플북 체험단에 덜컥 응모하고 말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곰브리치나 젠슨,가드너가 쓴 전통적인 미술사 서적들은 그 정통성과 유명세에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이들에겐 이미 훌륭한 입문서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는 시각과 수많은 미디어와 매체를 접하고 있는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보편화된 서양미술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줄 새로운 형태의 미술사 서적이 필요하다 싶은 시기에 짠하고 등장한게 이 책 게이트웨이 미술사가 아닐까 한다.
표지부터 보자면 마티스의 유명한 컷아웃 작품인 '이카루스'가 표지로 쓰였는데 기존의 미술사 서적 표지에 쓰였던 고전적인 서양화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티스의 초기 작품은 17세기 네델란드 화풍을 따랐다.야수파의 지도자로써 '붉은 방' 같은 강렬한 색채의 실내 풍경을 즐겨 그린것은 물론 점묘파와 조각에까지 관심을 기울였다.말년엔 건강이 악화되어 이젤 앞에 설 기력조차 없어지자 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서 작업하는 '컷아웃' 기법으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한다. 이 책엔 정력적이라면 그에 못지 않는 친구 피카소에게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친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의 '이카루스' 란 작품을 여덟 꼭지 중 한 꼭지로 쓰며 기초,매체,역사,주제,이 4개의 문을 통해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 독자가 자유롭게 읽으면서 각자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안내서이며 위대한 작품은 볼 때마다 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한다.이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한참 미술관련 서적에 관심이 가던 시절 <명화 속 그림 읽기>
류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책 왜 읽어? 그림은 그냥 보고 느끼고 좋으면 그만이지,그리고 저 그림에 저런 뜻이 있는건지 저 옛날 그 화가가 직접 말이라도 해준거 아니지 않아? " 사람들이 괜히 그림에 의미를 찾고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의도의 말을 던져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지금도 지식이 거의 없지만 그 시절 더 무지했던 나는 그저 현대의 그림엔 작가의 의도나 의중말고 중세의 종교화에 숨어 있는 암시나 관념,메시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없던 시절엔 그림으로 밖에 메시지를 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숨은 속 뜻도 알아야 그림을 더 즐길 수 있지 않냐?이 정도의 말도 거의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거창한 작가의 의도와 고귀한 뜻이 담겨져 있어야만 하는게 아니란것엔 백프로 동의한다.자기 침실 벽에 걸어 두고 싶은 그림은 그저 색채와 구도가 마음에 들고 전체적인 느낌이 좋으면 그만이라도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선 친구의 말에 동의하지만 미술도 학문이다. 박상미 작가가 쓴 '나의 사적인 도시'에도 나와 비슷한 일화가 나오는데 박상미님은 그림은 '논문이다'라고 말한다.물리학의 역사를 바꾼 논문들은 어렵다고 화내지 않으면서 동시대의 현대미술앞에선 이게 그림이냐? 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작품성을 폄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색과 스타일이 있지만 한국어를 안다고 어려운 논문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이 그림을 보는 기호는 될지언정 그림을 보는 능력은 아니라고.
미디어가 없던 중세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예술이 이용되었고 카메라가 없던 시절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을 남기기 위해 그림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충족된 요즘엔 미술은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좀 더 미술 자체의 이슈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으니 그 이슈를 모르는 건 제대로 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배움은 결코 억압이 아니라 자유로워 지기 위한 것이며 그림을 마음대로 보기 위해선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시각예술을 새롭게 안내하는 것으로 미술의 기초,매체,역사,주제라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선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중요한 기술들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여덟 점의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Gateways to art' 라 명명했다고 한다.책을 읽다보면 이 여덟 작품들을 거듭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미술의 새로운 면과 그 감상법을 배우게 배치되어 있다. 구성의 특성,제작에 사용된 재료,창조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시대와 문화,작품이 개인적인 면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때로는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기도 하고 영적 세계나 삶과 죽음의 순환 같은 것에 관해 말해 주기도 하며 이런 논의들로 흥미가 생긴 독자가 이 책 속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다시 찾아보는 선순환이 생기도록 미술에 대한 눈을 넓혀주고 있다.
미술이란 우리가 가장 힘들고 비극적인 상황에서조차 인간의 경험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으며 미술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일화는 유명하다.
한 점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러 작품을 비교하고 대조해 볼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삽화를 설명하는 챕터에선 윌리엄 모리스·에드워드 번-존스의 <제프리 초서 작품집>과 캔버스 유채 그림인 노먼 웰록의 <리벳공 로지>와 컴퓨터로 만든 벡터 드로잉 작품인 콕 초우 여의 <키도>가 한 화면에 담겨 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미술가들이 선을 왜,어디에 사용했는지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어 편리하다.
'Gateways to art' 상자글에서 소개한 여덟 작품 중 '올메크족의 거대 두상'을 살펴보면 1부 기초에선 올메크족 미술가들이 덩어리 자체를 사용해서 권력을 과시하는 거대 두상을 만들어낸 방법을 살펴보고 2부 매체에선 올메크족의 도자기 그림과 거대 두상을 비교하고 조각 기법도 알아돈다.3부 역사에선 거대 두상을 발견하고 발굴해낸 과정을 경험하고 4부 주제에선 이 거대 두상들이 올메크족을 다스린 통치자들의 초상임을 알려주는 증거들을 살펴본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언뜻 나오지 않는 대답에 앞서 '강'이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시대,다른 화가들에 의해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의 유명한 미술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강을 떠다니는 단풍잎>은 강물과 잎사귀의 모습을 실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보는이에게 가을날 강가의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 이는 감상자에게 느낌을 전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이집트의 네스파웨시파이의 나무관에 그려진 강은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깊은 종교적 관념을 표현하고 사후의 행복한 삶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방편이기도 했고.
윌리엄 G.월이 그린 강과 그 주변 풍경은 단순한 풍경의 강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미국의 확장과 발전을 기념하는 방편이였다.루이즈 니벨슨의 1972년 작품인 <수직으로 쏟아지는 하얀 물>은 물고기로 가득한 폭포의 유사성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닌 주의 깊게 쌓아올린 작품을 살펴보고 우리로 하여금 물이 쏟아지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네 작품을 보면 다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강을 볼 수 있다.종교적 메시지,국가주의와 식민 정복,휴식의 기분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빈틈없이 구성된 기하학적인 암시로...
시각적 수단을 통해 생각을 소통하면 세상을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해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미술의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수천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세계의 전 지역에서 만들어진 750점의 미술작품,865개의 컬러 도판을 통해 세대와 시대,장소를 초월한 미술작품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가며 배우다 보면 미술의 언어를 이해함을 넘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인류의 오해와 벽들도 허물어 지지 않을까하는 큰 그림도 그려보게 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미술을 접하고 느끼고 평가하는것도 미술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지만 이런 폭넓은 정보가 담긴 미술사 서적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이 더 커지진 않을런지 ^^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어렵게만 느껴지는 곰브리치를 접하기 망설여졌던 분들,미술이라 불리는 모든 매체를 한 곳에서 접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샘플북만 접하고서도 다양한 시각과 깊이에 반해서 꼭 구입해보리라 생각이 들만큼 신선한 미술사 책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감히 추천해 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