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사 데일리워드의 <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흑인 여성이자, 모델, LGBT 활동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삶 역시 콤플렉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그녀는 백인처럼 하얀 피부를, 긴 생머리를, 학창시절 남학생들이 뽑은 예쁜 여학생 15위안에 들어가기를 꿈꿨다.
그러나 사랑받기를 열망하던 평범한 소녀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14살에 경험한 인생의 첫 관계, 불안과 우울증, 강간 그리고 나이 든 남자들과의 성매매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나쁜 어른만 있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몸부림쳤다. 마약, 술, 자살시도까지 한 그녀에게 어느 누구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일이 생긴다. 어느 재즈카페에서 위스키를 마시던 중 재미있는 공고를 발견한 것이다. ‘시 낭독회’였다. 매주 한 번씩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써서 낭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읊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나아가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이후 글쓰기는 그녀의 업이 되었다. 그녀는 SNS에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전세계 여성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렇게 출간된 그녀의 시이자 에세이 <뼈>는 브리 라슨,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의 글 속에서 마음을 후비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 공감이 갔던 시 한 편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1105/pimg_7818811612348686.jpg)
업보
그여자애, 네가 어리고 친구가 없을 때네 삶을 지옥으로 만든 그 여자애가오늘 네 옆을 지나갔다. 이름들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지만감정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십 년, 아니더오랜세월이 지난 지금도 너는뱃속 깊은 곳까지여전히 겁에 질리고여전히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게 말하고 여전히 몹시 작게 글씨를 쓰기 때문이다.
여전히 꾹꾹 악물고 참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그녀가 업보를 치를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결혼했고, 곧 아기를 낳을 거라고,
꼭 진심으로 그런 일들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여전히기분은 개같다.
꾹꾹 악물고 참아왔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기분이 개 같음을 선언한다.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게 말하던 소녀가 이제는 너 때문에 기분이 개 같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선언이야말로 가장 약했던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줄 시작점이다. 그녀가 지적한 것처럼 이름들은 중요하지 않지만 감정들은 중요하니까. 수많은 여성들이 내 감정을 무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스라이팅을 당했던가.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