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마음의 평화
  • 네가 나를 떠나면
  • 크리스털 하나 김
  • 17,820원 (10%990)
  • 2026-08-31
  • : 37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심리적인 것과 그래야만 했던 감정의 서사를 잘 표현해놓았다.

그 시대의 양상을 소소한 부분까지 파고들어 짚어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전쟁과 피난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앞세우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가까이 들여다보게 한다.

배가 고파 약초의 뿌리를 입에 넣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루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 사랑만 바라볼 수 없었던 삶이 있다.

역사의 한복판에서도 사람은 사랑하고 질투하고 오해하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네가 나를 떠나면』을 읽으며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의 얼굴이었다.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려보기도 전에 찾아온 6·25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해미 역시 홀어머니와 병든 남동생 현기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한다.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도 알 수 없고, 내일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다.

작품 속 피난 생활은 멀리 있는 역사적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좁은 공간과 부족한 먹을거리, 사람들의 불안한 눈빛까지 생활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해미의 가족사가 더해지면서 시대의 상처는 한층 깊어진다.

아버지는 1944년 일본으로 징집되어 광산에서 일하다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일본의 어느 산에서 세상을 떠난다.

시신조차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겨우 해방을 맞았지만 가족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빈자리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런 와중에도 해미에게는 사랑이 찾아온다.

경환과 해미, 그리고 경환의 사촌 형 지수를 둘러싼 미묘한 관계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을 만든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해미를 마음에 품었던 경환의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에게 해미는 한 시절의 첫사랑을 넘어 삶 곳곳에 스며 있는 존재이다.

"그녀는 모든 곳에 있었고 언제나 모든 곳에 있었다"라는 마음이 왜 나왔는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 것 같다.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사람이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미의 선택을 안타까움만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병든 동생을 돌봐야 했으며, 자신의 감정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급하게 치르는 결혼식과 그 뒤에 이어지는 삶을 보면 사람 사는 일은 어느 시대나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접기도 하고, 마음과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변화도 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제2공화국 무렵의 혼란과 시위, 마산항에서 발견된 학생의 죽음과 같은 시대적 사건들이 개인의 일상 옆을 지나간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이 누군가에게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하루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밤이 된다.

역사에서 몇 줄로 지나가는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흔드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특히 인물의 이름과 연도를 앞세워 시점을 옮겨가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해미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일이 경환이나 지수의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는 서운함이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했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을 쉽게 탓하기 어려워진다.

학교에서 떠도는 선생님에 관한 소문이나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말, 부모의 옷과 손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작은 장면들까지 놓치지 않은 점도 특별했다.

이런 생활의 조각들이 모여 당시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을 살려낸다.

거대한 사건보다 인물들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가 오히려 시대를 더 또렷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네가 나를 떠나면』은 전쟁을 다룬 소설이면서 사랑과 가족,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시대가 개인의 삶에 남긴 흉터와 그 안에서도 사랑하고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마음 하나를 평생 품고 살았다.

아프면서도 잊지 못할 시대적 비극을 잘 담아낸 소설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