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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
  • 신상문구점
  • 김선영
  • 12,600원 (10%700)
  • 2025-09-18
  • : 2,40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문구점에서 문구류를 고르며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작은 진열대 앞에 서서 고작 몇백 원짜리 연필을 고르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벅찼다.

김선영 작가의 신작 『신상문구점』은 그때의 공기와 설렘을 다시 꺼내온다. 낡은 간판, 좁은 골목,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소년 동하의 이야기는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는 듯하다.

책장을 넘기자, 나는 이미 그 문구점 안에 들어가 있었다. 표지 속 낯익은 동네 문구점 풍경, 골목마다 얽혀 있는 사연들, 그리고 어쩐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한 동하의 성장기가 겹쳐지며 읽는 이를 서서히 끌어당긴다.

소설의 주인공 동하는 마을의 여러 인물들과 얽히며 성장한다. 천체과학관에서 본 태양계 모형은 그에게 처음으로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안겨준다. 그 물음은 소년이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적 충격 같은 것이다.

동하는 신상문구점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배워 나간다. 흰 바위산이 있어 한뫼라 불리던, 지금은 백석리가 된 마을의 풍경처럼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와 결핍이 교차한다.

그 속에서 동하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결국 사랑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읽는 내내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월단 할매의 꿈과 신상문구의 황영감 이야기가 교차하는 대목이었다. 월단 할매가 돌아가신 후, 그 빈자리는 단순한 상실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균열을 드러낸다.

황영감은 문구점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아있지만, 그 역시 나이 든 세대의 고독과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동하는 그 틈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성장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관계란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몸소 깨달아간다.

또 다른 인물 택이 아저씨의 목소리도 특별하다. "오늘 하루 잘 살면 된다"는 그의 말은 소설 전체를 꿰뚫는 통찰처럼 다가왔다.

매일을 버티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안에서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희망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말은 동하뿐 아니라 나에게도 깊게 남았다. 어쩌면 김선영 작가가 택이 아저씨의 입을 빌려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올려보았다. 문구점은 문방구라 불리던 시절, 단순히 학용품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아이들의 작은 놀이터이자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였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관문 같은 곳이었다.

『신상문구점』 속 공간은 그런 경험의 총합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 문구점을 통해 소년의 내면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교차시킨다. 그래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기대감이 생기고, 또 다른 사연이 나올 것 같아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고투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청소년의 심정을 잘 표현해낸 부분이었다.

동하의 이야기는 소설 속 허구인 동시에, 우리의 실제 경험과 닮아 있다. 그래서 읽을수록 애틋하고 안쓰럽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김선영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아이들의 언어를 빌려 어른의 마음까지 깊이 흔들어 놓았다.

『신상문구점』은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마을 공동체의 초상화다. 멀리서 보면 아늑하고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고단한 현실과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과 균열이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동하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문구점 앞 풍경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던 소리, 할머니의 목소리, 황영감의 무뚝뚝한 뒷모습까지.

이 책은 성장의 기록이자 기억의 복원이다. 문구점이라는 장소에 깃든 향수와 현실, 사랑과 상실의 감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과거와 마주한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사랑을 원했는지, 어떤 상처를 품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신상문구점』은 소년 동하의 이야기이면서도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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