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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
  •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 15,120원 (10%840)
  • 2025-08-30
  • : 54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 『필경사 바틀비』는 표지에서부터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두툼한 편지 봉투 위로 기묘하게 기운 잉크병이 엎질러져 있고, 검은 얼룩이 번진 종이는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는다.

펼쳐보는 순간, 이 책이 단순히 고전문학의 한 자락인 것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차갑고도 뜨거운 질문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바틀비의 이 한마디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반복해서 울린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자연스럽게 뉴욕 월가의 삭막한 사무실 풍경을 떠올렸다. 빽빽한 업무, 끊임없는 사본 작성, 그 안에서 무심하게 등장한 바틀비는 처음에는 성실한 사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모든 요청 앞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 단호하면서도 무기력한 태도는, 누구도 쉽게 맞설 수 없는 기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거절과 침묵이라는 키워드가 맴돌았다. 그것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내던지는 부정의 선언 같았다.



허먼 멜빌의 문장은 지금 읽어도 현실에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명의 발전 속에 가려진 어둠을 낱낱이 들춰내며, 인간 소외라는 주제를 강렬하게 밀어붙인다.

특히 바틀비의 침묵은 현대의 직장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그림자다. 효율성과 성과를 강요하는 체제 속에서 어느 날 불쑥 자리에서 버티듯 거절하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이해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바틀비의 고독을 단순한 무기력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가 보여주는 단정한 태도, 끝내 꺾이지 않는 부정 속에는 인간적 품위가 깃들어 있다.

이 책에는 「필경사 바틀비」 외에도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빌리버드」 등 멜빌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다.

특히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에서는 극명한 계급 차이를 날카롭게 드러내어 인상적이었다. 눈을 녹여 안약으로 쓰는 가난한 이들의 처지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푸딩과 부스러기라는 사소한 음식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갈라놓는 장면에서는,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사소한 풍요가 얼마나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

또한 「행복한 실패」는 허드슨강을 배경으로 인간의 운명과 좌절을 다룬다. 실패라는 단어 앞에 행복을 붙여놓은 역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것은 패배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완성일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빌리버드」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멜빌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집단 속에서 개인이 부딪히는 모순, 제도의 냉혹함, 그리고 불가피한 희생의 아이러니가 압축되어 있다. 법과 권력의 이름으로 한 개인의 삶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작품이 단지 예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적 비극임을 깨달았다.

『필경사 바틀비』는 고전의 이름으로 포장된 책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을 끌어올린다. 바틀비의 침묵은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저항으로, 또 때로는 순수한 자기 보존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야말로 멜빌이 우리에게 건네는 날카로운 질문일 것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때로는 무력하게, 때로는 고고하게, 그리고 때로는 너무도 아프게. 멜빌은 그 고독한 문장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드러냈다.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동시에 사유하고 통찰하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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