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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
  •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 정선임 외
  • 15,300원 (10%850)
  • 2025-03-28
  • : 20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는 네 사람이 각기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겪은 언어의 공백, 관계의 간극, 감정의 어긋남을 네 편의 단편으로 엮어낸 소설집이다.

풍경보다 말이 중심에 있고, 여행보다 사람의 내면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이다. 나라마다 풍습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듯,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동일할 수 없다.

포르투갈, 인도, 태국, 사이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인물들은 타인과의 거리뿐 아니라 자기 내면과의 거리 또한 헤아리게 된다. 그 틈에서 피어나는 어긋남, 오해, 미처 꺼내지 못한 감정들은 말보다 더 오래 여운을 남긴다.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그 침묵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왜 어떤 말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지를 천천히 짚어나간다. 이 책은 여행이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 문득 드러나는 감정의 진동을 정면으로 마주한 기록을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정선임 작가의 「해저로월」은 포르투갈 리스본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고모의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 떠난 수정의 여정을 따라간다. 수정은 고모가 생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그녀가 그곳에서 보냈을 삶의 흔적을 좇는다. 신념과 선택,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다 담기지 않았던 감정들이 리스본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살아 있는 동안엔 끝끝내 나눌 수 없었던 마음이, 죽음 이후에야 겨우 마주 놓이게 되는 장면들이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김봄 작가의 표제작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는 인도 벵갈루루에서 머무는 예술가 레지던스를 배경으로 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유의 방식 속에서 생활을 함께하는 이들은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언어가 삶의 일부가 되는 공간에서 말의 무게는 더욱 커지고, 말이 곧 책임이 되는 순간에 사람들은 종종 침묵을 택한다. 이 이야기는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얼마나 신중해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김의경 작가의 「망고스틴 호스텔」은 태국 방콕의 작은 숙소를 배경으로 한다. 여행 중인 다영과, 그곳에 먼저 머무르던 지유와 예나는 전혀 다른 나이와 삶의 조건을 지닌 인물들이다. 우연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침묵 속에는 일상의 무게와 피로, 그리고 삶을 버텨내기 위한 각자의 자세가 스며 있다. 망고스틴이라는 과일처럼 단면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내면의 복잡함이 각 인물의 표정에 담긴다. 거창한 사건 없이도 깊이 있는 감정이 포개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최정나 작가의 「낙영」은 사이판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해원과 낙영, 두 인물의 관계를 그린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라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끌리고, 밀어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얽힌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고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말보다 표정이, 표정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말로 포괄할 수 없는 감정의 복합적인 결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소설집은 언어와 감정 사이, 관계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흔들림을 천천히 담아낸다. 표현되지 못한 말들이 그 자체로 의미가 되고, 침묵은 감정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이 네 편의 단편소설은 우리가 타인과 마주할 때 쉽게 지나쳤던 마음의 결을 붙잡게 만든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건네고 있다.

각각 다른 곳을 여행하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은 특별한 울림을 가진다. 저마다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감정과 기억을 마주한 네 작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흐름 안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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