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3 할머니의 연애시대/ 벌리 도허티 장편소설/선우미정 옮김를 읽었다.

나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연년생으로 남동생이 태어나 나는 할머니의 무젖을 먹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다니고 할머니의 습성을 배우고 할머니 친구분들과 놀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낯선 시골에서 처음 교사생활을 했을 때도 나는 할머니와 함께 시골집에서 생활했다.
할머니는 일이 몸에 벤 분이셨다.
작은 텃밭에는 고추며 방울 토마토, 상추가 난들난들 자라게 했고
일찍 불이 커지는 시골밤에 기나 긴 이야기로 나의 친구가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숙제를 하러와서 놀다보면 고구마며 감자를 쪄 주셨고
손녀가 선생이란 걸 아주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글자를 가르쳐드리고 우리는 찬송과 성경을 함께 읽고 불렀다.
할머니의 이름은 장몽술이었다.
처음 할머니의 이름을 쓰고 나서 할머니는 자신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고, 성경을 한 자 한 자 읽고 찬송가도 낱자로 읽으며 부를 때 환한 얼굴로 행복해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 작은 할머니 이야기는 참 가슴이 아팠다.
우리 할아버지는 곡물장사를 크게 한 대상이었다.
당연히 집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녔고 할머니는 일꾼들 수발을 하며 집을 지켰다.
할머니는 아들 넷을 마마로 떠나보내고 아버지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라던 어느 해 할아버지는 아주 약하고 어린 색시하나를 데려와 같이 살라고 했단다.
얼굴이 창백한 달처럼 뾰얗고 가녀린 색시였단다.
할머니는 두려워하는 그 색시가 미웠지만 동생처럼 대하며 일손하나 얻은 샘치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무심하게 두 부인 모두를 두고 또 전국을 떠돌며 장사만 했다고 한다.
다음 해 그 색시가 아이를 낳다가 산후열이 심해 그만 세상을 떠났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작은 댁 장사를 치뤘고 아기를 길렀다.
아기도 약한 엄마 체질을 닮아 세돐 되던 해 폐렴으로 엄마 뒤를 따랐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와 곡물상을 차렸고 할머니는 여전히 집안을 돌보며 지냈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어떻게 만났냐고 물었더니
결혼식 하던 날 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키가 훤칠하고 손썹이 짚고 인물이 좋으셨단다.
그래서 아들 넷을 먼저 보내고도 할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들 하나를 믿고 살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 하나 있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딸 대신 첫 손녀를 보셔서 너무 기뻤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를 떠 올리며 이 책을 읽었다.
할머니의 연애시대는 마치 우리 부모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는 제스.
제스를 위해 온 가족은 축하파티를 연다. 그리고 제스는 그곳에 모인 어른들의 비밀 이야기와 모든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현실 속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선택하고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만남과 헤어짐, 흥분과 고통, 망각과 후회가 교차된 인간의 삶이 조용히 펼쳐진다.
외할머니 브라이디와 외할아버지 잭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의 축복이나 도움도 받지 못한채 비밀리에 결혼을 했고 힘든 일생을 보내게 된다.
할머니인 쇠를 가는 소녀 도로시는 파티에서 자기가 다니는 회사 소유주의 아들인 에드워드를 만나게 된다.
"내가 장담하는 데 말이죠"
"당신이 여기사 가장 아름다워요. 그거 알고 있어요?"
"당신 눈은 블루벨 꽃처럼 아름다워요."
라고 속삭이는 왕자의 음성을 듣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에서 도로시를 만난 왕자 에드워드의 행동을 보고 절망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옆집에 살고 날마다 저녁인사를 하러오는 앨버트를 자신의 짝으로 받아들인다.
늘 어쩡정한 모습으로 살던 아버지 마이크는 맥주파티에서 만난 제니퍼에게 반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대신 이런 마이크를 좋아하고 열렬히 쫓아다닌 조씨는 결국 기차를 타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존과 장애인 대니를 낳고 제스를 키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집에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가족이다. 너무 가까우면 배려와 서로간의 예의를 잊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무시하고 살던 아버지 마이크와 오빠 존은 우연히 비둘기 키우기로 마음을 열게 되는 모습이나 제스가 장애를 가진 대니 오빠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제스는 디스코장에서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와 헤어지고 자기 길을 걷게 된다.
할머니의 연애시대는 사랑이 결국 일상의 삶을 선택하는 문제로 현실에서 한 발 직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여러가지 울림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묘사나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과 절절함이 빠진 거의 순백의 밥맛같은 소설 <할머니의 연애시대>.
그래서 더 솔직하고 더 진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루이 이모할머니와 길버트 할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장면이었다.
루이 이모할머니는 그녀와 길버트 할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묶어준 그들의 초라한 ㅅ상 속에서 마지막 희생을 치렀다. 루이 할머니는 오래된 안락의자에 길버트 할아버지를 앉힌 다음 벽난로 가까이 끌어다 놓고 그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함께 추억의 노래들을 즐겼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이모할머니는 그 끔찍한 집을 떠났다. 영원히.(196면)
요즘 노년에 대한 이야기와 책이 많이 나온다.
아름다운 삶과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니어링의 이야기나 타샤 할머니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그런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평범한 루이 이모할머니 이야기도 먼 훗날 멈춰서서 되돌아볼 때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삶의 한 자락을 펼쳐보이게 한다.
인간이 이상 누구나 필멸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 뒤에 올 아이들은 위해 남겨 줄 수 있는 소박한 선물은 바로 사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이자 자기 길을 간 성실한 모습인 일상의 삶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은 <이름 없는 너에게> 이후 두번째로 작가 벌리 도허티를 만나게 했다.
그녀의 글은 언제나 열려있다.
이 책 마지막에도
기차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그것은 바로 내 어린 시절, 떠나가는 기차가 내게 늘 들려두전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러나 절대로, 결코, 두 번 다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터였다. 뱀이 드디어 허물을 벗은 것이다.
나는 엄마가 준 선물을 열어보았다. 대니 오빠의 사진이었다. 추억 속의 오빠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오빠가 내 삶을 축복해주고 있었다.(222면)
끝없이 열린 미래.
부모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이야기는 또 어떻게 흘러가 아이들의 이야기와 만날 것인가?
끝없는 물음이 또 열린다. 아이들은 이 책 속에서 자기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귀한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