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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오늘날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 온 단극 체제가 해체되고, 다극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는 이행의 과정이 평화롭지만은 않다. 몰락해 가는 제국은 패권 연장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며, 그 유지 비용을 타국에 전가하고 있다. 미 해병대 출신으로 타일랜드에서 활동하는 독립 지정학 분석가 브라이언 베를레틱(Brian Berletic)이 자신의 기고문과 텔레그램 채널(The New Atlas) 등에서 줄기차게 짚어내는 미국의 외교·안보 행태는 이른바 ‘부담 공유(burden sharing)’라는 미명으로 진행되는 제국의 동맹 수탈 구조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베를레틱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스스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혼란과 위협을 지렛대 삼아 동맹국과 속국들을 옥죄고 있다. 단적인 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무기 강매다. 최근에 미국은 한화 34조원에 달하는 최신 전투기 판매를 사우디와 계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다시피 미국은 현재도 진행 중인 예멘 전쟁에서 사우디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며 표면적으로는 갈등에서 한발 물러선 행보를 취했다. 하지만 미국이 서아시아 지역에서 물러서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 베를레틱의 진단이다. 미국은 직접 군사 작전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무기 제공, 유지보수, 정보·감시·정찰(ISR), 특수부대(SOF) 지원 등을 통해 이름만 빼고 서아시아의 모든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페르시아만 아랍국가들은 에너지 생산 시설과 수출망이 마비되는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안보를 명목으로 자국 내에 미군 기지 주둔을 허용했지만, 정작 미국과 이스라엘이 촉발한 대이란 전쟁 국면에서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실질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이란의 집중 타격에 노출되었다.
베를레틱은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우디가 이란을 적대시하는 미군을 자국에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란이 사우디를 선제적으로 공격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답은 “아무것도 없다”다. 이란의 군사력은 서방의 압박에 맞선 방어적 성격이 짙으나, 그것을 인접국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 포장하고 부풀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철저히 미국의 고안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우디는 이 가공된 위협 시나리오에 휘말려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르며 미제 무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어디 사우디뿐이겠는가? 우크라이나에서도 미국은 서서히 발을 빼면서 나토의 유럽 국가들에 막대한 전비를 떠맡기고 있다. 어디서든 위기를 창출하고 방치한 뒤, 그 공포를 팔아 자국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제국의 뼛속 깊은 본질이다.
이러한 행태는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에 명시된 ‘부담 공유 네트워크’ 확장의 일환이며, 이전 행정부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기조다. 미국은 유럽과 캐나다, 그리고 아시아 동맹국들에 러시아와 중국, 이란, 조선 등을 안보 위협 상품으로 포장하여 적극적으로 판매한다.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세계 패권 유지 비용을 동맹국이라는 ‘하수인 국가’들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 수탈의 과정에서는 고도의 감정적 ‘정치 연극(political theater)’도 동원된다. 만약 미국이나 그 속국들의 지도부가 대중을 향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되찾기 위해 당신들의 공공복지 프로그램을 삭감하고 경제적 파탄을 감수해야 한다”라며 정직하게 말한다면, 누가 이를 수용하겠는가. 따라서 미국은 대중을 공황 상태나 분노에 빠뜨릴 인위적인 위협을 끊임없이 생산해 낸다. 유럽, 캐나다, 서아시아의 속국 지도자들은 가끔 미국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거나 ‘버림받은 척’ 분노를 표출하는 외교적 연극을 벌인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자국 인민의 공공 자금을 삭감하면서까지 미국의 대리전에 열광적으로 뛰어드는 충견 노릇을 지속하고 있다. 대중이 지배계급의 기만에 속아 가공의 적을 패퇴시키기 위한 무기 지출과 대결 구도를 열렬히 ‘요구’하도록 세뇌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거시 경제학에서 비판받는 ‘근린 빈곤화 정책(beggar-thy-neighbor)’이 국제 안보 영역으로 이식된 최악의 형태다. 과거 전범인 헨리 키신저가 “미국의 적국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미국의 우방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다”라고 냉소했듯, 오늘날 미국의 우방치고 이 술수의 희생양이 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유럽 국가들의 참상은 끔찍할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들은 미국의 압박에 따라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스스로 차단했다. 수년째 이어진 에너지 가격 급등은 유럽의 산업과 경제 전반을 급격하게 붕괴시키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대신 미국의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미국산 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갖다 바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대러시아·대중국 봉쇄망에 강제로 편입되면서, 최대 교역국들과의 경제 교류 기회가 박탈당하고 중동 에너지 수입망이 교란되는 막대한 손실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의 적국은 미국과 직접적인 전쟁을 치러야 해서 고통받고, 미국의 우방은 미국의 입맛에 맞게 교역을 통제당하느라 막대한 경제적 피를 흘리는 것이다.
이 근린 빈곤화의 청구서가 지금 한국의 문 앞에도 당도해 있다. 미국의 불법적 개입으로 이란과의 분쟁이 격화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고조되자,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비대칭 전력에 직면하여 단독으로는 더 이상 전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미국은 우방국들에 참전을 압박하고 나섰다. 전 세계가 이 무모한 확전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거리를 두는 가운데, 오직 한국의 이재명 정부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파병 요구에 응할 태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에 연루되는 파병”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명목의 파병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을 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자국의 안보와 직결되지도 않은 미국의 중동 패권 유지 전쟁에 참전하여 자국민을 분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려는 태도는 제국이 우방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동원하는지, 그리고 매판적 지배층이 어떻게 자국 인민의 이익을 배반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다.
베를레틱의 진단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미국의 전술적 기만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것은 다극 질서를 논하는 논자들이 섣부른 낙관주의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지정학적 위기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종종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성과, 브릭스의 경제적 굴기, 최근 대미 국면에서 이란이 보여준 선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확실한 승리 조짐 등을 거론하며, 미국의 패망이 이미 완성된 현실인 양 희망 섞인 진단을 내놓곤 한다. 베를레틱은 ‘제국의 반격’이 결코 만만찮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그런 섣부른 판단에 제동을 건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는 한 가지 중대한 지정학적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이 자행하는 무리한 착취와 수탈, 침략 행위가 결국 패권 유지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정세의 퍼즐을 완성하려면 베를레틱과 같은 전술적 분석뿐만 아니라, 지경학적 차원의 거시적 통찰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단적인 좌파 정치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의 분석이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부담 공유’ 강요는 꼭 미국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국이 세계 대다수 국가들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자해적 결과로 귀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근린 빈곤화 전술은 건재한 패권의 증명이라기보다는, 쇠망해 가는 제국의 단말마적 발버둥이다.
허드슨은 내가 며칠 전(9월 19일) 페이스북에 번역해서 소개한 대담(<붕괴하는 단극 체제와 다극화의 지정학: 미국 금융 패권의 자멸과 브릭스(BRICS)의 부상>)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 전략이 도리어 미국을 구조적으로 고립시키고 다극화 체제의 도래를 앞당기고 있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다투어 브릭스(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비서방 국제조직의 품으로 쇄도하는 현상이 그 명백한 증거다. 허드슨은 “브릭스 전략의 전반적인 설계와 조율을 완성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라는 역설적 진단을 내놓는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달러 패권을 무기화하며, 이란산 및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를 막기 위해 전 세계에 무차별적인 제재를 가한 결과,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 중심의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을 대체할 실질적인 대안을 구축하도록 등 떠밀어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은행 간 메시징 시스템인 SWIFT에서 즉각 퇴출시키겠다고 끊임없이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그 오만한 협박의 결과로 중국은 자체적인 청산결제시스템(CIPS)을 만들어냈다. 9월 12∼1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회의의 초반에 회원국들은 “우리는 결제액의 65%를 옮겼고, 가능한 모든 것을 중국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만약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타국을 향해 경제적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달러 사용 강제 차단 등의 일방적 조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브릭스 국가들이 이토록 자발적이고 빠르게 달러 패권에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드슨의 분석은 동맹의 자원을 쥐어짜는 미국의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방산업체나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배를 불릴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신뢰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제국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결국 베를레틱의 전술적 분석과 허드슨의 거시적 통찰을 종합하면, 오늘날 전 지구적 위기의 뇌관이 어디에 있는지 그 실체가 명확하다. 미국의 쇠망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 대세이며, 세계는 다극 질서로 급속하게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제국의 지위를 순순히 내려놓지 않으려 발악하며,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물리적 폭력을 세계 곳곳에 뿌리고 있다. 이름하여 ‘영구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영구전쟁은 기본적으로 미국 인민대중의 민생이나 진정한 의미의 ‘국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오직 군산복합체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 그리고 부패한 정치 엘리트들로 얽힌 ‘미국 지배 블록’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극소수 지배층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미국 국내의 공공복지는 파탄 나고 있다. 아니 그뿐만 아니다. 세계의 무고한 인민들이 미국의 영구전쟁과 그에 동반된 ‘부담 공유’로 인해 학살과 경제적 궁핍이라는 가혹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참담한 것은 쇠망하는 제국에 결박된 속국들의 처지다. 이들 국가의 매판적 지배층은 자국의 주권과 인민의 안녕을 지키는 대신, 제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자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정책을 서슴지 않으며 인민의 삶을 외세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고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조세 수탈에 나선 트럼프의 강압적 요구에 굴복하여 이미 수백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뒤에도 이제 미국의 침략 전쟁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하려는 태세인 한국이 그 대표적인 징후다.
인류를 전쟁과 궁핍으로 내모는 제국의 야만적 영구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명확하다. 수명을 다한 제국이 억지로 쥐고 있는 일극 세계질서의 해체, 그리고 모든 국민국가가 대등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다극 질서의 확립이 그 굳건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제국의 착취 구조와 이에 부역하는 각국 지배층의 기만을 꿰뚫어 보고, 세계의 인민이 각자의 국가에서 진정한 민주적 주권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 질서가 수립되어야만 한다. 맹목적인 종속의 사슬을 끊어내고 인민의 정치적 각성을 이루어내는 것, 그것만이 닥쳐오는 지정학적 격변기 속에서 세계 인민이 공멸을 피하고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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