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 남녀가 지하철 노약자석 셋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다. 가운데 좌석을 비우고 양 끝에 떨어져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가운데 좌석에 앉자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구태여 그 의아함을 풀 까닭까진 없어서 이내 눈길을 돌리다가 여자가 하는 행동 때문에 멈칫한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뜯고 까는 손길 더한 다음 남자에게 건넨다. 초코파이를 비롯한 음식물이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받아 우물우물 먹는다. 다 먹고 남은 봉지를 여자에게 준다. 봉지를 받아 든 여자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거두어 먹는다. 이런 행동을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남자가 잠을 청한다.
여자는 봉지 포함 이런저런 쓰레기를 정리한 뒤 등을 젖혀 기댄다. 아주 잠깐 허공을 향한 그 눈빛이 보였다. 현실에서든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든 그렇게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 시선에는 여전히 그 아득한 눈빛이 걸려 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들 행동이 내 심사를 흔들어댄다.

모든 진실을 다 알 듯도 하고 대체 어쩌면 저렇게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교조화된 조선 후기 유교 사회를 거쳐 왜 식민지, 미군정, 내전, 다양한 형태 독재를 겪으면서 내재화된 가부장 심리 기제라고 설명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우라 잘못 불리는 쓰레기들한테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이 뒤틀린 현실에서.
저녁 식사 때 충분히(!) 마신 반주로 얼얼했는데 그 아득한 눈빛에 찔려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지고 만다. 우환에 나로 말미암아 내 옆지기가 그런 눈빛을 지은 적은 없을까, 까지 살을 파고드니 발걸음이 아연 허든댄다. 따지고 보면 결이 같아서 내가 자꾸 되작거리는 거다. 가리산지리산 헤매는 내 삶부터 아득한데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