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통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내가 단행본 100권 가까운 분량 글을 서재에 올렸다고 한다. 이 기간에 나는 식물, 미생물, 제국주의를 한무릎공부 하면서 진심 다 해 증언했다. 제국주의 글을 올리니 초반부터 독자와 그 반응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거의 문이 닫힌 서재가 돼버리자 나도 글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브런치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렇게 따지면 100권 훨씬 넘게 글을 썼다. 그 글에는 당연히 내가 걸은 숲과 물 이야기가 포함된다. 숲 이야기 가운데 서울 경계에 걸쳐 있는 600m 이상 높은 산 계곡 50개를 걸은 내용이 있다. 실은 계곡 둘이 거기서 빠졌다. 오늘 그 이야기를 씀으로써 지난 3년 “강력한 시간”대 마무리에 갈음한다.
이번에 걸은 북한산 마지막 골짜기 둘은 흔히 구기터널 계곡, 불광사 계곡이라 부르는 곳이다. 둘 다 깊고 크지 않으며 교통도 그리 편하지 않아 많이 찾지는 않는다. 구기터널 계곡으로 들어가 불광사 계곡으로 나오는 동안 만난 사람은 서넛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적함 몇 제곱 반비례로 나는 두 계곡에 흠씬 매혹되었다. 사실 구기터널 계곡은 ’23년 9월에 들어갔다가 도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때 보고 반해 언제 다시 온다, 온다, 하다가 오늘에서야 왔다. 푸른빛이 거둬지고, 얼어서 물소리도 거의 나지 않으나 여전히 탱맑은 기운을 자아올려 준다. 굽이진 흐름 따라 올라가다가 홀연히 용이 승천하는 환상에 빙의된다. 이 골짜기 이름은 내게 이제부터 ‘미르’다.


골짜기 노루막이에 이르러 앞뒤로 펼쳐진 풍경을 잠시 살핀다. 남으로는 가까이 백악산, 인왕산, 그리고 저 멀리 관악산까지. 북으로는 앵봉산, 노고산, 그리고 저 멀리 개명산까지. 따스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불광사 계곡으로 내려간다. 미르 골짜기와는 달리 너럭바위가 많고 그 위로 난 비탈진 길이 내 고소공포증을 초든다. 내려갈수록 선림봉 바위 절벽이 시선을 압도한다. 그 바위 절벽이 너무 잘생겨서 연거푸 탄성을 발한다. 마침내 그 잘생긴 바위 절벽이 낳은 잘생긴 폭포 향림이다. 통째로 얼어 붙어서 고요히 드러내는 희고도 파리우리한 빛이 신비하기까지 하다. 여름에 그 소리를 듣기 위하여 꼭 다시 와야겠다. 이 골짜기 이름은 내게 이제부터 ‘향림’이다.
이렇게 해서 52개 골짜기를 걸었다. 마음 문에 걸어두었던 두 골짜기를 안으로 모셨으니 서울 산 모두에게 예를 다한 듯하다. 빛접은 발걸음으로 20년 전 드나들던 음식점에 든다. 뜨끈한 국물에 차끈한 소주가 찰떡궁합으로 어울려 몸·맘을 풀어준다. 한껏 흐벅진 심사에 싱겅싱겅한 실내 공기조차 느끼지 못한다. 알알한 상태로 나와 거리에 서서 하늘을 우러른다. 반쯤 이운 낯빛으로 달님이 물으신다. “그대 삶은 웬만한가?” 내가 대답한다. “제풀로 욕된 삶에 들었으니 열없지만 어숭그러하다 여깁니다.” 오늘 내 성공을 응그리진 못했지만 내일 우리 성취를 그느르고 있으니, 그저 째마리 삶만은 아닌 듯하다. 남은 날도 제국 생활양식 밀막으며 발맘발맘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