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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나는 쌈보다.” 이렇게 말하면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은 말한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쌈보 아닌가요?” 심하게 쌈 좋아하는 정도 사람을 쌈보라고 하지 않는다. 쌈보는 쌈을 짓는 사람이다. 아무리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돌미나리, 쑥갓, 무청, 부추, 대파, 쪽파, 양파로 쌈을 싸지는 않는다. 나는 심지어 양파 막-양파에 막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으로도 쌈을 싼다.


내가 쌈보가 된 데는 긴 내력이 있다.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형성된 습관과 기억이다. 1950년대 중반 강원도 평창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내 식습관 또는 취향은 그냥 초식동물에 가깝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놀다가 끼니때가 되면 씀바귀, 야생 돌미나리 꺾고, 텃밭에 있는 상춧잎을 따서 집으로 들어온다. 뭐 씻을 필요조차 없으니 그대로 쌈 싸고 고추장, 막장 올리면 된다.


대파 쌈


양파 쌈


양파막 쌈-막 모습 살리기 위해 밥을 넣지 않음-


뇌리에 아주 깊이 박힌 다른 기억 하나가 있다. 열 살까지 나는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종조부와 함께 살았다. 1965년인가 우리나라 전역에 엄청난 홍수가 밀어닥친 적이 있었는데, 집을 둘러싼 오대천 지류 두 줄기 물 수위가 높아지자 걱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살피러 나가셨다.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품에는 거의 작은 항아리만 한 배추 한 포기가 안겨 있었다. 눈으로 웬 거냐 여쭙자,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오냐, 오늘 점심 반찬은 배추 쌈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커다란 배추 한 포기를 점심 한 끼 쌈 싸서 남김없이 뱃구레 속으로 모셨다. 꽹한 추억이다.

 

내 쌈보 내력에는 정신 또는 심리 측면이 존재한다. <목도리 찾기>에서 말한바, “어린 시절 거의 방치된 상태로 양육되면서 겪은 마음 스산함과 실제 추위에 대한 두려움에” 반응해 목도리로 목을 둘러“싸는” 행동과 남들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 온갖 푸성귀로 밥을 둘러“싸는” 행동은 본성이 같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목도리로 둘러싸면 실제로 따스하지만, 쌈 싸서 먹으면 더 맛있다는 헨둥한 근거는 없다는 사실. 그러니 그럼에도 진심 다 해 쌈 싸는 걸 보면 둘러싸는 또는 둘러싸이는 자체가 어떤 상징 에너지로 작용하는 듯하다. 오냐, 오늘 저녁엔 뭐로 쌈 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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