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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나이 들수록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야 한다는 말을 나는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동창들과 만나면 흔히 나누는 이야기 화제도 방향도 워낙 달라서 재미없음을 넘어 부아가 치미니 어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나 정치 문제에서 내 또래들은 거의 전부가 나와 반대편에 서 있다. 언쟁하기는커녕 아예 말 섞고 싶지 않다. 내내 침묵하고 있다 돌아설 때 드는 생각을 기억하고 냉정하게 거절해 온 지 제법 된다.

 

최근에 그나마 말 통하는 친구 하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 이름을 대면서 굳이 내게 연락해달라 하고 모임을 제안했다 한다. 나는 역시 그런 문제가 있어서 갈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친구는 무슨 근거에선지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을 거라며 웬만하면 나오라고 당부한다. 출발 직전까지 망설이다가 에멜무지로 가 봤다. 정말 희한하게 그날은 정치 얘기도 없고 시답지 않은 미셀러니도 없고 혼자 십 분, 이십 분 떠드는 놈도 없다.

 

기분이 해낙낙해져선지 빠른 속도로 소주잔을 비워갔다. 모임 뒷부분 쪽 기억을 어디다 흘리고 왔다. 아침에 확인하니 기억 말고도 하나 더 흘린 게 있다. 목도리다. 음식점에 전화해 물은바 어제 밤엔 유실물이 없었단다. 혹시 나중에라도 찾으면 연락한다기에 길에다 흘렸나보다 하고 미련을 거두었다. 한데, 나중에 연락한다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남는다. 그 음식점 일반전화기에 내 전화번호가 남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서다.

 

때마침 그 근처로 갈 일이 생겨 행여나 하고 들러보았다. 직원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있다고 대답하고 아무 말 없이 건네준다. 좀 이상스럽게 느껴져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냥 내 추측에 따라 포기하지 않은 결과라 여긴다. 뭘 잃을 때, 나는 보통 알끈하지 않고 그냥 놓아버린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의 모든 일을 홀로 가말며 살아온 오랜 습성 탓이다. 이 습성을 깨뜨린, 사소하나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 묘한 흥이 돋는다.


 

사실, 나는 목도리를 두 가지 이유에서 아주 좋아한다. 첫째, 목 앞이 다 드러나 허전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해서다. 아마도 어린 시절 거의 방치된 상태로 양육되면서 겪은 마음 스산함과 실제 추위에 대한 두려움에 그 곡절이 닿아 있지 싶다. 폴라(polo neck) 옷을 입고도 목도리를 할 정도다. 둘째, 일상 삶과 직업 수행에 영성을 담는다는 내 식 제의 복장이다. 이를테면 미사 집전하는 사제가 목에 두르는 영대(stole) 같은 구실이다.

 

첫째 이유는 상처에 보이는 반응(reaction)인 셈이고, 둘째 이유는 내 삶에 보이는 감응(response)인 셈이다. 통속한 논리로 따지면 이 둘은 공존해서는 안 된다. 원효 성사 일심(一心) 사상을 따르는 내 논리로 따지면 이 둘은 공존해야 맞다. 그래야 겸허와 자긍이 무애자재(無碍自在)인 삶일 수 있다. 그 목도리 찾기를 이제 내 생애에서 기릴 만한 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글 쓰는 인제에도 나는 바로 그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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