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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엄마와 함께, 축 생일> 김선우 인사이트 특강이 열렸다. 일곱 번째 시집 『축 생일』에 실려 있는 시 가운데 여덟 편을 낭송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생전 처음 그런 데를 갔다. 물론 김선우가 아니었으면 그마저도 가지 않았을 테니 처음 갔다는 얘기는 그런 델 본디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생색이 무색하게도 가본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 거기서 시인 스스로 서사를 드러내 준 시 말고도 다른 시가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김선우 시집 모두를 읽었는데 사실 단 한 번도 시집 뒤에 붙어 있는 평론가 해설을 들추지 않았다. 그 해설이 얼마나 내 독해를 도울지 모르지만, 그 도움 받아 김선우를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한 며리가 있다. 김선우를 읽을 때 ‘내 창자 안에 들어가 시를 쓰나?’ 하고 소름 돋는 경험을 수시로 했다. 문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김선우는 내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목숨 걸고 쓴 사람이고 나는 목숨까지 걸지는 못하고 읽는 사람이라는 지점에서 날카로운 금 하나 그어진다. 아니다. 금이 베어진다.

 

그 쇠 비린내 맡으며 김선우 서사를 듣자니 <엄마> 칼날 위에서 김선우 작두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침묵하는 우렛소리 들으며 <달 봐요 파티>, <달 봐요>, <달 봐요 2>를 한 호흡에 읽자니 김선우 어깨 짚고 공중제비해 가뭇없이 번져가는 진실이 “지구를 낳은 지구의 배꼽”을 낳은 우주 배꼽에 가 닿는다. 김선우가 몰라서 나는 알게 되고, 내가 알아서 김선우는 앎을 낳은 어미가 된다. 알고 모르고는 “平平”하다. 시는 과학을 낳는 어미가 된다. 시와 과학은 “平平”하다. 平平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나가는 개구리가 된다.

 

우물 바깥으로 폴짝폴짝 뛰어나온 개구리 한 마리 되어 나는 김선우와 마주한다. 그는 나더러 ‘초목을 닮아가는 신선’이라 한다. 초목을 닮아가는 신선과 깊은 병으로 강력한 시간을 온몸에 심은 천하 시인 김선우가 다정하게 끌어안는다. 김선우 볼에서 엄마 온기가 배어 나온다. 그 다습고 그리운 향기가 平平 세상을 빚어간다. 그와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은 그러나 해맑은 환희로 들어차지 않는다. 시리고 아픈 풍경이 가차 없이 여지없이 속살을 쑤셔댄다. 뒤엉킨 모순을 어뜨무러차 들어 올려 허리 꼿꼿이 펴고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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