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작정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건원릉(建元陵)으로 간다. 건원릉은 조선 태조를 모신 능이다. 필경 신덕왕후 두(!) 정릉과 태조의 길을 순례한 뒤라 생각이 그리로 향했을 테다. 건원릉서껀 아홉 능 모신 곳을 동구릉(東九陵)이라 부르며 능 군락 중에서 가장 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동구릉이지만 오늘 여기 이르기까지 장장 60년이 걸렸다.
능역 규모와 내 시간을 맞추어 보고 이번에는 건원릉만 다녀가기로 한다. 행금한 진입로와 그 길 따라 흐르는 내(川)가 삽상하다. 우줄대는 고목들이며 다보록한 버섯들이 숲 위아래를 번갈아 눈길에 내어준다. 그들에 홀려 시공을 잊다 보니 어느새 건원릉 홍살문 앞이다. 천천히 다가가 봉분 아래 언덕 발치에 선다. 예를 표하고 원 정릉 버들잎을 묻어드린다.
이로써 내 범주 인류학 서사 오늘치에는 태조와 신덕왕후 영혼이 해낙낙이 재회했다고 쓴다. 이어 발원 하나 올린다: 두 분께서 더불어 조선을 여신 선령으로 조선을 거듭거듭 팔아먹은 토착 왜구 매국노 패거리 악귀를 닫아주소서. 다른 능에는 없는 무성한 억새 관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절하고 물러난다. 제국 개들이 왈왈대는 도시로 아금박차게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