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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將除去無非草(약장제거무비초) 如取看來總是朶(여취간래총시타)

 

나는 이 시/문구를 초서로 휘갈긴 서예 작품에서 20여 년 전 처음 만났다. 초서를 배운 적이 없는 나로서는 대부분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붓이 움직여간 순서를 따라가며 그 이상한 글씨 하나하나를 ‘독해’해 갔다. 이 독해에는 작은 옥편이 큰 도움을 주었다. 큰 도움은 물론 작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세 글자를 잘못 읽었다. 원문은 이렇다.

 

惡將除去無非草(오장제거무비초) 好取看來總是花(호취간래총시화)

 

저 뜨르르한 주희 작품이라 한다. 그 뜻은 “싫어해 베기로 하면 풀 아닐 리 없지만 좋게 보면 모두 다 꽃이라네.”다. 惡(오)와 好(호), 草(초)와 花(화)가 대구를 이룬다는 사실을 모른 나는 惡(오) 대신 若(약), 그러니까 ‘만일’로 읽고, 好(호) 대신 如(여),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로 읽었다. 花(화)를 잘못 읽은 朶(타)는 옥편에 꽃봉오리로 나와 있으니 거의 불가피한 오독이었다.

 

잘못 읽은 대로 풀면 이렇다: 만일 베기로 하면 풀 아닐 리 없지만 있는 그대로 보면 모두 다 꽃봉오리라네. 대강에서 뜻은 다르지 않으니 큰 오독이라 볼 수 없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朶(타)는 옥편에 적혀 있는 뜻과 달리 정확히 말하면 꽃을 세는 단위라고 하므로 바로잡아야 옳다. 朶(타)를 꽃봉오리로 쓴 옛 그림 하나를 기억하고 읽었으니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如(여)다. 如(여)가 惡(오)와 대구를 이룰 수 있는가. 통상 생각하는 대구로 치면 그럴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잘못 읽은 대로 글을 썼더니 어느 후배가 如(여)는 好(호)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해 주었다. 나는 생각이 달라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호오는 인간 관지(觀地)고 그에 따라 그만큼 풀이든 꽃이든 인간중심주의 그물에 걸리기 때문이다.

 

好(호)가 지닌 넓은 의미에서 ‘좋다’는 말은 ‘아름답다’, ‘사랑스럽다’라는 뜻까지 포괄하고 있으므로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스럽게 의인법으로 나아간다. 의인법이 꽃을 사람처럼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라 할 때에도 극진히 제한해 비인간 생명을 인간 시선에서 한껏 해방해야 한다. 如(여), 곧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꽃을 꽃에서도 해방할 수 있다. 왜 하필 꽃이어야 하는가?

 

주희가 무슨 목적으로 이 글을 남겼는지 몰라서 톺아보는 게 아니다. 구태여 그가 지닌 한계를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읽어도 괜찮다. 이 글을 긍정주의 독본으로 써먹는 장사치들이 나타날 때는 문제가 다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세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논의할 때 비판 독본으로 삼을 수도 있다. 고전을 대하는 자세다. 공동체 지혜는 열린 순환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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