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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내 주변에 선 어떤 비인간 존재들, 또는 내가 그 주변에 선 어떤 비인간 존재들과 나 사이에 일상 네트워킹-내 용어는 팡이실이(hyphaeing)다-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최근 들어 제법 자주 언급한다. 그 실재 여부를 정치하게 따질 며리는 없겠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 의도한 선택과 동일한 결과로 인도될 때 느끼는 경이와 경외를 확인한 기억은 남길 만하다고 여긴다.

 

내 일요일 루틴 가운데 하나는 광화문 교보에 들러 과학-식물—인문-시 코너에서 신간 서적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모셔 오는 일이다. 얼마 전 책 제목과 목차, 그리고 저자 면면을 살펴본 뒤 현재 관심사와 거리가 멀다고 판단해 도로 내려놓은 책이 한 주 지나 다시 눈에 들어오길래 집어 들고 목차를 조금 더 세심히 살핀다. 처음에는 눈길을 끌지 않았던 소제목 하나가 돌연 튀어 오른다: ‘쩌는 음색’과 소리의 육체성. 그래서 품어온 책이 바로 『듣기의 철학』이다.

 

우선 거기부터 읽는다. 음악학자가 쓴 글인데 잘 읽힌다. 이른바 MZ세대가 음악 행동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음색 쩔잖아요.”라는 표현에 뿌리내려 이야기를 짜나간다. “쩔다/쩐다”라는 말은 어원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매우 좋은, 뛰어난 대상을 대뜸 느끼는 상황을 묘사한다. 설명 없이, 이해 전에, 몸으로 벌써 들어와 있다는 이 표현은 칠십 대인 내게도 익숙하다.

 

그런데 왜 하필 “쩌는” 감각이 음색으로 향할까? 글쓴이에 따르면 음색은 간접 또는 부정 방식으로 정의되는 음악 요소다. 음높이, 길이, 크기가 모두 같은 두 음악이 존재할 때 서로를 구별해주는 기준이 음색이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음색이 단연 중요해지기 이전까지 음악에서는 “부차” 또는 “이차” 요소였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반전 계기나 근거를 모바일 사운드스케이프 시대 이어폰 문화, 몸 매질로 듣는 음악 경험에서 찾는다.

 

설득력도 있고 흥미롭기도 하다. 읽다가 불현듯 되살아난 기억에 터 잡아 이 이야기를 좀 더 곱고 촘촘하게 톺기로 한다. 음색이 간접 또는 부정 방식으로 정의되는 음악 요소라는 말은 보편 진실인가부터 살핀다. ‘불현듯 되살아난 기억’이 전하는 바로는 아니다, 다. 왜냐하면 우리 전통음악, 그러니까 국악은 서로 다른 음색이 어울려 빚어내는 단선율 음악이기 때문이다.

 

국악은 창이든 악기 연주든 본디 화음이 없다. 실제로 생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악기가 화음으로 연주하게 되어 있지 않다. 생황마저도 중국 묘족(苗族)에서 유래해 정착한 악기다. 국악은 음을 정성(定性)으로 파악한다. 정량(定量)으로 파악하는 서구 음악과 본성이 다르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언어를 포함한 문화 전반에서 이런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할 따름이다. 음악학자인 글쓴이 자신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이렇게 쓰고 멈추었을 터이다.

 

여기서 멈추면 다음 내용도 따라 멈출 수밖에 없다. MZ세대가 이어폰 문화를 통해 쩌는 음색 세계로 들어갔다는 분석에서 멈추면 이 현상이 서구에서도 일어났으리라는 추정이 당연해야 한다.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인용한 롤랑 바르트 이야기가 방증이다. 음색과 닮은 ‘결정(結晶)’ 감수성은 롤랑 바르트 아닌 일반인에게는 서구 MZ세대라도 어림없다.

 

같은 MZ세대지만 서구 MZ세대와 달리 우리 MZ세대에게는 음색 음악을 지어낸 생태 본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아귀가 맞는다. 식민지 교육에 “쩔어서” 본성을 거의 상실한 기성세대와 전혀 달리 개별성, 육체성으로 열린 우리 MZ세대가 모바일 사운드스케이프 시대와 때마침 만나 옛 본성을 되찾은 사태로 해석하는 일이 그렇게나 무리일까. 이 해석이 틀릴 수 있음에도 제시하는 까닭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여전히 제국 패러다임에 갇혀 있어서다.

 

올해로 광복 80주년이다. 8개월여 전, 일제에 부역한 특권층 매국 세력이 반란 일으켜 나라를 식민지 상태로 되돌릴 뻔한 일을 겪고, 가까스로 정상 되찾아가는 중이라 심사가 복잡하다. 장갑차 막아선 민주 시민이 자랑스럽다가도, 여전히 악귀로 준동하는 반란 무리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나마 요 며칠 제국 가로질러가는 이재명 정부 보며 섟 푼다. 수제천이라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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