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입이 없었다."(127쪽)라는 문장을 만나고 난 뒤, 아마 이틀은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깊고 아득한 문장을 만나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시를 쓰고 싶은 작가의 욕망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마음이 상충될 때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강윤미 시인은 '엄마'라는 단어를 조금 더 무겁게 선택한다. 선택하기 보다는 선택 당한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들에게 '괜찮은'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 그래야만 아이들이 꽤 근사한 성장 과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장은 어떤가. "힘이 없고 나약한 눈은 멈추지 않았으므로 쌓일 수밖에 없는 강인한 고요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1mm 위에 희미한 1mm가 합해져 눈의 장벽이 생긴다."(23쪽)라니. 그렇다. 눈은 손바닥 위에 얹어 놓으면 그 순간 녹는다. 시인의 표현처럼 힘이 없고 나약한 눈이 된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내리는 그 힘은 끝내 '쌓일 수밖에 없는 강인한 고요'에 이른다. 이 문장의 의미를 단순히 티끌 모아 태산처럼 읽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티끌은 녹지 않으니까. 사라지는 것들이 모여 사라지지 않을 때에 만이 강인한 고요가 되는 것이다.
강윤미 시인의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는 그런 문장과 사유들로 가득하다. 내재율이 가득 흐르는 문장들의 축제다. 책의 편집 또한 깔끔해서 문장의 가독성 또한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신유진 작가의 추천사 그대로 이 책을 오래 꺼내 읽(입)을 것 같다. 강윤미 시인의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진다.
떠난다는 것은 다른 빛깔의 하늘과 다른 종류의 바람을 맞으며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0
예술의 처음은 사랑이고, 예술의 정점은 사랑의 그림자이며, 예술의 결말은 사랑을 사랑이 아닌척하는 사랑의 가면이다.- P23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외로운 사람의 얼굴 같다. - P24
눈을 만지면 차가운데 눈이 모여 있는 나의 마을은 따스하다.- P25
귤이 노랗고 주황색인 이유는 잊지 말고 자기 좀 데리고 가란 뜻일 테다. - P44
헤어지고 만나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시간이 허락해야 함을 깨달았다.- P61
난 두 개의 이름을 저울질하다 ‘엄마’라는 단어를 조금 더 무겁게 선택했다. 아이는 당장 배고프다고 울고 보채지만 시는 입이 없었다.- P127
품절. 왜 좋은 것은 뒤늦게 알게 되는 걸까. 몇 년 전에 나온 음반이지만 품절. 나는 생각한다. 이토록 황홀한 음악이 세상에 나와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뭐 하고 있었을까. 음반이 나온 그해에 나는 어떤 생각에 몰두해 있었나. 음반 발매의 시작점과 품절의 시작점. 그 간극을 채우지 못해 밤은 온통 아쉬움에 까맣게 타들어 간다. 온라인 판매처에 ‘재발매 알림 설정’을 해놓는다.- P139
밤은 내가 잠들지 않으면 밤으로 남을 것이다.- P143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아.- P177
불변의 밤마다 그림과 영화와 음악과 시에 기댔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돌봐주어서 나는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작가가 되니 참 좋구나.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돌봐주어서 나는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