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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님의 서재
  • 사람을 사랑하는 일
  • 채수아
  • 16,650원 (10%↓920)
  • 2025-12-09
  • : 202



이 책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펼쳐 들었을 때, 가슴 한구석에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묵직한 감정이 서서히 올라왔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나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상처들을 가슴 깊이 묻어왔기 때문이다. 채수아 작가의 이 책은 한 여성이 삶의 혹독한 계절을 통과하며 ‘사랑’이라는 따뜻한 온기로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치유해갔는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영혼의 기록이자,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이들에게 던지는 깊고 고요한 위로의 편지다.

 

책 속에서 가장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대목은 단연 17년에 걸친 시집살이와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들이었다. 나 역시 그 가혹했던 시대를 몸소 통과해 온 세대로서, 한 여성이 가정을 지키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며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이 남일 같지 않게 다가왔다. 상처의 골짜기에서 써 내려갔다는 그녀의 일기 문장들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만이 덕이라 믿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우리 세대의 옛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그 시절의 시집살이란 단지 몸의 고단함에 그치지 않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아득한 절망을 동반하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진정으로 빛나는 지점은 그 아픔을 원망이나 불평으로 남겨두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화해와 치유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17년이라는 긴 고통의 시간 끝에 찾아온 화해의 순간을 작가는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품어낸다. 가족과의 오랜 오해가 풀리던 어느 새벽의 고요함, 그리고 아이들과 교실에서 나누며 배웠다는 사랑의 언어들은 작가가 삶을 대하는 깊은 태도와 숭고한 경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기에 기적 같은 화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다. 젊은 날엔 사랑이 뜨거운 열정이거나 무언가를 소유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월의 언덕을 넘어 지나고 보니, 진정한 사랑이란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고, 끝내 상대를 품어주는 일이며, 서툴더라도 진심을 담아 다가가는 작은 선택들의 누적이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도, 나에게 상처받은 이에게 손을 내미는 일도 결국은 내 안의 작은 온기를 베푸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책에 담긴 88편의 이야기들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 지나온 삶의 굽이굽이들이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나지막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남녀 간의 애정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그리고 지나온 세월 동안 상처투성이였던 나 자신을 지금 어떤 마음으로 안아주고 있느냐는 절절한 물음이다. 살다 보면 어떤 사랑은 깊은 흉터를 남기지만, 또 어떤 사랑은 그 흉터를 쓸어내리며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법이다. 결국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명예나 부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친절이라는 진리를 이 책은 고요히 일깨워준다.

 

이제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들어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날의 아픔도, 미움도, 서운함도 결국은 우리 모두가 사랑에 서툴렀기에 생겨난 그늘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젊은 시절엔 왜 그리 서로에게 박박 우겨대며 상처를 주었는지,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고 아쉬운 일들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고단했던 내 젊은 날을 다독여주고, 남은 삶 동안 어떤 마음으로 곁에 있는 이들을 대해야 할지 나침반이 되어준 고마운 책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가슴속에 얽혀 있던 감정의 타래를 풀고 싶은 이들, 특히 인생의 잔잔한 언덕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실버 세대들에게 이 책의 진솔한 문장들을 꼭 권하고 싶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나 자신을 온전히 안아주는 일이야말로, 남은 생을 가장 눈부시고 품위 있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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