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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님의 서재
  •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
  • 발라지 스리니바산
  • 18,900원 (10%↓1,050)
  • 2026-10-19
  • : 55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참으로 많은 ‘질서’의 종말과 시작을 목격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신음하던 가난한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광경을 보았고, 굳건할 것 같았던 냉전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도 보았다. 흙먼지 날리던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손편지 대신 이메일과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가와 사회는 늘 당연하게 내 삶의 울타리였다. 그러나 발라지 스리니바산의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은 그 당연했던 울타리의 개념 자체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네트워크 국가’라는 개념은 생경하면서도 대담하다. 기존의 국가가 물리적인 영토와 혈통, 역사적 비극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면, 미래의 국가는 인터넷 공간에서 같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모인 이들이 교류하고, 신뢰를 쌓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경제 체제를 갖춘 뒤, 최종적으로는 현실 세계의 땅을 매입하여 국제적인 승인을 받는 새로운 나라를 건립한다는 구상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젊은이들의 황당무계한 공상과학 소설이나 유토피아적 맹신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땅 한 평 없이 어떻게 나라가 존재할 수 있으며, 수천 년간 인류를 지배해 온 주권 국가의 틀이 그리 쉽게 허물어지겠는가. 나 같은 노인에게 국가란 목숨 바쳐 지켜야 했던 피와 땀의 결정체이자, 삶의 마지막을 기댈 유일한 안전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저자의 통찰이 단순히 철부지 기술자의 호기에 그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기존 국가 시스템의 균열을 돌아보라. 정치적 극단주의, 비효율적인 관료제,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그리고 분열된 국론. 나이가 들수록 내 아이들과 손주들이 살아갈 미래의 한국 사회가 과연 지금처럼 안전하고 풍요로울 수 있을지 깊은 걱정이 들곤 했다. 저자는 바로 이 기성 체제의 번아웃과 기능 마비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맺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묻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는 요구가 아니다.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는 지혜를 어떻게 새로 짜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변화는 언제나 상상력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이 무너지고 근대 정부가 들어설 때도, 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할 때도 기성세대에게는 모든 것이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네트워크 국가 역시 지금은 낯설고 무모해 보이지만, 이미 디지털 세상에서 나고 자란 우리 손주 세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노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저자의 주장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과 가치관의 동질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약자나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영토 기반의 국가는 부족한 점이 많았을지언정, 최소한 상부상조와 공동체적 보살핌이라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디지털로 쪼개진 파편화된 국가들이 자칫 끼리끼리의 이기주의나 새로운 형태의 격차를 만들어내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쉽게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은 늙어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거대한 정신적 자극을 준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세상은 우리가 아는 틀을 넘어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나간 시절의 방식만을 고집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옛것의 지혜와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이 만날 때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정교한 도면을 제공하는 명저다. 지혜로운 노년이라면 마땅히 일독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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