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월이 흘러 머리칼이 하얗게 세고 눈이 어두워져도, 자식과 손주가 책을 펼쳐 들고 글을 읽는 모습만큼 대견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책을 만났다. 젊은 날 삶의 길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한 줄의 문장이었고, 세상의 풍파 속에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위안을 준 것 역시 책 한 권이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손주들에게 어떤 글을 읽혀야 할지,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어떤 지혜를 쥐여주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김진형의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은 바로 그러한 노년의 고뇌와 조부모의 마음에 따뜻하고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시험에 잘 나오는 교양서적이나 고전 목록을 기계적으로 나열해 놓은 단순한 목록집이 아니다. 청소년기의 길목에 선 아이들이 삶의 가치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정성스럽게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다.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사회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100권의 책들이 알기 쉬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필치로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책이 오늘의 우리에게,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생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정확히 짚어낸다.

칠십 년을 살아오며 느낀 인생의 진리 중 하나는, 사람이 젊은 시절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품었는가가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중학교 시절은 아이가 부모의 품을 벗어나 자아를 형성하고 세상의 온갖 가치와 충돌하기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제대로 된 고전과 명저를 만나는 것은 인생의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일과 같다. 이 책에 담긴 100권의 도서 목록을 둘러보니, 내가 젊은 날 눈물 흘리며 읽었던 문학 작품부터 삶의 방향을 잡아주었던 철학서, 그리고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게 해 준 역사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요즘 세상은 온통 짧고 자극적인 영상과 순간적인 정보로 가득 차 있다. 손주 녀석들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곤 했다. 긴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이 과연 앞으로 펼쳐질 복잡하고 가혹한 세상을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간파하고, 아이들이 책 읽기의 재미와 깊이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책의 문을 다정하게 열어준다.

노년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읽었던 책과 오늘날 내 손주가 읽어야 할 책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때 느끼는 유대감은 참으로 깊다. 명작이 지닌 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일깨워 준다는 데 있다. 이 책에 언급된 100권의 책을 매개로 손주와 할아버지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유산보다 값진 정신적 계승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100권이라는 숫자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나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 읽기는 어디까지나 즐거운 탐험이어야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적이나 번잡한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나 조부모는 이 책을 아이에게 건네며 “이 100권을 다 읽으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의 책을 하나씩 골라 깊게 빠져들 수 있도록 자애롭게 기다려 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주를 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조부모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지침서다. 나 역시 다가오는 주말에는 이 책을 곁에 두고 손주 녀석과 함께 서점에 들러볼 생각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서가 사이를 거닐며 인생의 소중한 보물들을 하나씩 추천해 주는 즐거움, 그것이야말로 늙어가는 삶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기쁜 특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