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일흔 고개를 넘어 정갈한 서재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본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팽창과 성장 그 자체였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번 돈을 모아 두면 세상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가치를 올려주었고, 경제 성장의 온기는 개인의 삶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안유화 교수의 <부의 곡선>을 읽어 내려가며, 이제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판이라는 사실을 서늘하게 깨닫는다.
저자는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자산 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로 해부한다. 거시경제의 거센 파도가 어떻게 개개인의 삶을 흔드는지, 그리고 그 파도 속에서 자산의 지형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 기술 혁명과 패권 전쟁이 얽혀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제의 궤적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내리막과 굴곡의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이 책을 펼쳐 든 이유는 단순히 남은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한 욕심 때문이 아니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부(富)’가 갖는 의미는 젊은 시절의 그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층에게 부가 도전과 확장의 수단이라면, 우리 같은 세대에게 부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품위다. 그러나 저자가 경고하듯,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터전이 가라앉는 수축의 시대에 과거의 관성에 얽매여 있는 것은 고요히 위험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생각하게 된 대목은 부동산이나 단기 금융 상품 같은 눈앞의 자산 격차보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의 격차’가 훨씬 더 무섭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땅이나 아파트에 자산을 묻어두고 안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저자가 제시하는 부의 곡선은 단순한 돈의 흐름이 아니라 기술과 인구, 국제 정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명사적 변화의 궤적이다. 자식 세대가 마주할 거친 세상의 지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경험만을 고집하는 늙은이의 충고는 자칫 헛된 참견이 되기 쉽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남은 자산을 지키는 지혜뿐만 아니라, 자식들과 세상의 변화를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훌륭한 다리가 되어준다.

결국 인생이라는 긴 여정 끝에서 마주하는 부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 거센 경제적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일상을 지킬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자유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온전히 이해하고 대비하는 일은, 남은 삶을 타인이나 시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모다.

책장을 덮으며 창밖의 짙어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세상의 곡선은 끊임없이 가파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흐름을 직시하고 대비하는 자에게 변화는 위기가 아닌 평온의 조건이 된다. 수고로웠던 지난날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그늘을 남겨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겸허한 마음으로 시대의 지혜를 깊이 끌어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