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는 일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생업과 자식 뒷바라지에 치여 먼 나라로의 여정은 꿈도 꾸지 못했고, 은퇴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이제는 만만치 않은 여행 비용과 체력적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흔히 유럽 여행이라 하면 수백에서 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에, 선뜻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접한 또사라의 <100만 원대로 떠나는 갓성비 유럽 여행>은 내 고정관념의 벽을 기분 좋게 허물어뜨린 책이다.
연간 7회 이상 유럽을 오간다는 젊은 저자의 이력은 처음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가 제시하는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의 논리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구두쇠의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와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우리의 예산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유럽의 물가가 아니라, “이왕 가는 김에 최고로 즐겨야 한다”는 보상 심리일지도 모른다고 꼬집는다. 이 문장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늘 무언가를 할 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체면을 차리느라 불필요한 과소비를 하곤 했다. 유럽을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는 이웃집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조언은, 남은 인생을 조금 더 경쾌하게 살아가고 싶은 내 소망과도 맞닿아 있었다.

책은 크게 준비편과 실전편으로 나누어 매우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항공권을 다 구간으로 예매해 비용을 줄이는 법, 직항 대신 경유를 활용해 숨을 고르는 법, 그리고 한국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한인 민박이나 현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숙소 선택지 등은 실질적이면서도 흥미롭다. 특히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교통편 예약이나 예산 수립 과정은 디지털 기기가 익숙지 않은 노년층에게도 차근차근 따라 해보고 싶은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파리, 런던, 프라하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들의 핵심 실전 가이드와 돌발 상황 대처법은 마치 든든한 가이드가 곁에 있는 듯한 안도감을 준다.

물론 70대의 신체로 청년들처럼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전전하거나 오랜 시간 경유지를 버텨내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정형화된 패키지여행’의 틀에서 벗어나, 내 형편과 체력에 맞게 여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조금 덜 쓰고 발품을 파는 과정이 고될지 몰라도, 비용의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는 훨씬 넓어진다는 저자의 말은 나이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진리다.

이 책을 덮으며, 아내와 함께 나눌 다음 여정을 그려보았다. 거창한 패키지 깃발을 따라다니는 로봇 같은 여행 대신, 낯선 유럽의 어느 작은 골목길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소박한 사치를 꿈꿔본다. <100만 원대로 떠나는 갓성비 유럽 여행>은 단순히 경비를 아끼는 가이드북을 넘어, 나이듦이라는 한계에 갇혀 지레 겁먹고 있던 내게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준 고마운 나침반이다. 지갑은 가볍게, 그러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게 떠날 준비를 시작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