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경험과 지식이 단단한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굳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70대에 접어든 지금, 뒤를 돌아보면 평생을 바쳐 다듬어온 나만의 직무적 역량과 삶의 노하우가 성벽처럼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막막함도 밀려온다. 인공지능(AI)이 코딩과 번역을 하고 문서 작성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가 평생 ‘사람의 영역’이라 믿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자동화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쌓아온 전문성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비단 젊은 세대만의 고민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찾고, 글을 쓰고, 삶의 궤적을 이어가려는 노년에게도 이 질문은 생존과 존엄의 문제로 다가온다.
최연성의 <전략적 피벗>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쾌한 혜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피벗(Pivot)’을 단순히 하던 일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이직이나 전업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피벗은 농구에서 한쪽 발은 땅에 붙여 축을 유지한 채 다른 발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핵심 역량이라는 축은 단단히 굳게 붙잡되 그것이 더 높은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과 맥락으로 옮겨가는 전략적 방향 전환이다. 즉, 전문성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배치하는 것’이라는 선언이다. 이 문장은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거나 급변하는 세태에 소외감을 느끼던 노년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책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라는 강렬한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2년간 한 직장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쌓았던 인재조차 ‘회사’라는 맥락이 사라지자 자신의 경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는 일화는 서늘한 경각심을 준다. 이는 오늘날 AI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특정 시스템이나 조직에만 최적화된 전문성은 고인 물처럼 언제든 낡은 자산이 될 수 있다.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물러난 뒤, 혹은 기존의 사회적 역할이 다한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은 어쩌면 자신의 역량을 담아낼 ‘새로운 그릇’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변화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 전에, 스스로 ‘작은 실험’을 설계하고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년의 피벗은 청년들의 그것처럼 저돌적이거나 전면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평생 축적한 삶의 지혜와 윤리 의식,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라는 단단한 축이 있기에 더욱 안정적인 피벗이 가능하다. 예컨대 평생 행정이나 경영 일선에서 다진 조직 관리 역량은 은퇴 후 지역 공동체의 갈등을 중재하고 자산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재배치될 수 있다. 서재에 갇혀 혼자 쓰던 글을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는 칼럼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 역시 훌륭한 직무적·공간적 피벗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생존 전략은 무작정 버티는 미련함도, 불안감에 휩쓸려 아무 방향으로나 뛰어드는 무모함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맥락에 맞춰 그 무기의 쓰임새를 유연하게 바꾸는 유연함이다.

흔히 노년기를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수동적인 시기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전략적 피벗>을 덮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70대의 삶 역시 끊임없이 내 역량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옮겨 심는 ‘전략적 피벗’의 연속이어야 한다. 급변하는 세상 앞에 지레 겁먹고 뒷방 늙은이로 물러설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간 다듬어온 묵직한 축이 있지 않은가. 이제 필요한 것은 변화를 기회로 바라보는 유연한 시선과, 내 안의 전문성을 세상이 필요한 곳에 다시 배치하겠다는 작은 용기다. 변화가 완성되기 전, 나의 역량을 더 큰 기회로 옮겨 심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실전 가이드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