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에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여행하고 와서 유럽에 대해 관심이 많던 중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스페인사』를 읽었다. 스페인은 한국과 닮았다. 인구 규모,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비슷하다. 수많은 침략을 받은 반도 국가이며, 동족상잔의 비극과 긴 독재를 경험했다.
이 책은 난잔대학 외국어학부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학과에서 교수를 맡고 있는 나가타 도모나리 박사와 일본 호세이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국제문화과학 준교수를 맡고 있는 히사키 마사오 교수 두 공동저자가 이베리아반도에서 펼쳐진 장대한 역사적 장면들을 따라가며, 스페인이 어떻게 오늘날의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지 살펴본다. 로마와 게르만 왕국의 흔적 위에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고, 다시 기독교 세계가 레콩키스타를 이루기까지 이어진 복잡한 사건들, 대항해시대의 신대륙 개척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제국의 위치에 올랐던 순간들, 스페인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내전과 통합의 과정 등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복잡성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독보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대서양과 지중해,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길목에 있다. 다양한 나라 및 문명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이곳에서 충돌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몇 세기에 걸친 분쟁은 스페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때 거대한 제국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콜럼버스를 앞세워 스페인령 아메리카제국의 첫 장을 열었다. 하지만 종교혁명,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유럽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 부르봉왕가 전환 과정에서 벌어진 왕위 계승 전쟁 등 수많은 전쟁 속에서 짧은 전성기를 떠나보냈다.
이 책은 역사 교양서로 공항에서, 기내에서, 기차 안에서 펼치기에 부담 없는 분량과 구성으로 각 국가 역사의 주요 흐름을 100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또한, 그림과 지도를 함께 수록하여 당시의 상황과 변화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도록 도움을 준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으며, 마지막 격전지 그라나다를 통해서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이슬람 문화를 보게 되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종교 전쟁이 아니라, 문화적 융합과 갈등이 공존했던 시기로서 스페인 곳곳에 모스크, 성당, 요새 등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문화, 민족, 정체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글로벌화와 이주민 증가, 다문화 환경의 확산 등으로 인해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에서 비롯되다보니 갈등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쌓이는데 그 당시 스페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문화의 민족이 공존했던 것이 인상에 남았다.
아내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면이 많았다. 갑자기 가게 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여행은 너무 힘들었고 준비도 없었다. 그렇지만 지중해의 바람과 햇빛 그리고 만발한 색색의 꽃들은 나에게 준비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때 스페인 역사를 알고 여행을 떠났다면, 그곳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 중일 때 아름다운 지중해 날씨로 너무 행복했는데 책을 읽고 스페인은 정말 큰 나라이고 복잡한 지리적 특성과 기후가 존재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은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아는 만큼 스페인이 조금 보이고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스며든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