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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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셔츠
  • 예브게니 그리시코베츠
  • 13,320원 (10%740)
  • 2018-04-10
  • : 63

아는 러시아 작가가 누구냐, 라는 물음에 길게 답하기란 꽤 어렵다. 내 경우 톨스토이나 솔제니친 정도인 것 같다. 100년도 전에 세상을 떠난 옛날 작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 읽으면 좋지만 시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조금은 부담스러운 책들이라고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우연찮게 이 책을 읽게 됐다. 솔제니친 때부터 어렴풋이 느낀 건데 러시아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순진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행간에 묻어나오는 정서가 그렇다. 신선하다. 


영미권 소설에서 냉소적이고 비틀린 구석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좋을 때는 좋은데, 부담스러울 때는 한없이 부담스럽다. 대중소설을 제외한 경우라면 더 그렇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 꽤 있다(침울한 정서에 내가 짓눌리지 않기 위해… 한국소설도 마찬가지).


그래서인가 이 책, 순박하구나 싶다. 좋은 의미로. 어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박하다. 남자주인공이 원하는 게 한가지 뿐이다. 사랑하는 여자랑 만나는 것.


책을 읽을 때 보통 일정한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다. 앞으로의 내용을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기대도 나름 비중을 차지한다. 그 기대감이 배신당하면 치를 떠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좀 짜증은 난다. 아 역시… 또냐… 싶다. 그래서 기욤 뮈소나 댄 브라운의 소설을 피한 지 오래 되었다. 너무 자기복제가 심한 거 아니냐, 똑같은 얘기만 하는 거 아니냐! 하고 외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읽기에 길들여진, 그래서 작가들의 패턴이 뻔히 보일 정도로 교활해진 현대 독자의 딜레마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 소설의 문법을 어느 정도 피해가기에 주는 청량함이 있다. 예측을 배신해 줘서 좋았다. 이 때쯤 누군가의 배신이 나오겠지. 이 때쯤 누가 죽겠지. 이쯤 상상하면 벌써 책읽기가 싱겁다. 헌데 그런 예측에 빠진 독자의 허를 찌른다. 


쉬운 장치에 기대려면 쉽다. 극적인 효과 노리려면 쓸 거 무궁무진하다. 근데 참 고집스럽게도 피해간다. 그런데도 이야기라는 게 엮인다.


소위 말하는 문학성깨나 있다는 작품들 읽을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인간 정말 이런 존잰가. 고민하느라 교양은 쌓이는 것도 같은데 머리는 아프다. 대중문학은 재밌지만 너무 훅 없어진다. 감자칩 먹듯 바삭바삭 먹고 배는 안 찬다.


그런 양극단에서 지칠 때 이런 소설이 읽음직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법한 클리셰는 없다. 그렇다고 소설의 형태를 전부 배신하지도 않아서 이야기 따라가는 맛은 난다. 소설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건 싫고, 너무 가벼운 책도 싫다 싶을 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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