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핑키lee
  •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티파니 와트 스미스
  • 13,500원 (10%750)
  • 2020-07-01
  • : 283

"친구들이 나보다 잘 나갈 때 열받아. 엄청, 정말 싫다니까."

"나는 친구들을 사랑해. 그런데 걔네가 나보다 돈을 더 잘 벌지. 게다가 사는 집도..."

"친구들이 잘 되는 게 싫어. 근데 그게 또 죄책감이 든단 말이야."

누구나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 비교우위에서 오는 심리적 박탈감이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본능이다.

독일어로 샤덴 프로이데(이하 샤덴)는 부정적 반응, 공감의 부재, 공감의 반대말로 타인의 고통(피해)을 즐긴다는 말이다. 즉 의도적 공감 회피다. 샤덴은 질투, 시기, 조롱, 열등감 등 복잡한 감정이 숨어있다.

과연 사람들은 남의 실패를 즐길까?

2015년 독일 한 심리학 연구실에서 서른두 명의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의 얼굴에 근전도 검사 패드를 붙이고 경기 중계를 보여주면서, 독일 팀과 그 숙적인 네덜란드 팀이 페널티 킥을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그들이 미소 짓거나 찌푸리는 표정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독일 팀이 골을 넣을 때보다 네덜란드 팀이 골을 넣지 못할 때 독일 팬들은 더 빨리,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즉 자신의 성공보다는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일 잘나가던 친구의 좌절만큼 달콤하면서도 찝찔한 샤덴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도공은 도공을 시기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서 은근한 희열을 맛보고 일시적 우월감을 느낀다. 약자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자기 위안이다.

인터넷 매체의 확장으로 샤덴은 언제 어디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히 악한 마음과 하찮은 도덕성의 확실한 징후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본성이다.'라고 했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샤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샤덴은 좁게는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폭넓게는 불특정 다수에게 향한다.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샤덴은 조직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친구나 직장 동료는 잠재적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샤덴은 자기 기만이고 비생산적인 감정일까?

세상에 남의 고통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샤덴은 대부분 자업자득, 인과응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규칙을 어긴 자가 망신을 당할 때,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벌을 받을 때, 부도덕한 정치인의 비리가 드러날 때 느끼는 샤덴은 긍정적 선의의 힘이 되어 공적 담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샤덴은 선. 악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일시적이고 무해한 즐거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타인과 우리는 서로의 실수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찾는다. 그러니 샤덴을 느낀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인 감정의 일부일 뿐이다. '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 속담도 있지 않은가.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