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핑키lee
  • 나를 사는 순간
  • 안드레아스 알트만
  • 12,420원 (10%690)
  • 2018-06-30
  • : 61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고통은 평생 잊지 못한다. 다만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 혹은 고통을 지우기 위해 용서한 척할 뿐이다. '삶은 이따금 다른 사람의 죽음과 함께 끝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 경우 그렇다.


반면 다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삶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비극이다. 그 사람이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독일 소설가 '안드레아스 알트만'의 에세이집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고 자란 알트만의 <나를 사는 순간>에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저자의 경험담이 들어있다.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목소리다. 거친듯하면서도 지적이다. 읽다 보면 저자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는 전쟁 후 트라우마로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학대한 폭력적인 가장이었고, 만인의 적이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 모두 아버지 곁을 떠났다. 알트만은 20년간 살던 고향을 쫓겨나듯이 떠났다.


이후, 스물몇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세 개의 학업과정과 열세 번의 심리치료 시도에서 실패했다. 방황하던 그를 루저의 늪에서 끌어낸 건 언어였다. 글을 썼고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유명 작가가.


취재 기사를 쓰기 위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겪은 사건 사고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있다. 놀랄 만큼 솔직하다. 치부일 수도 있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쓴다.


에세이 소제목은 이렇다. 탐욕, 모험, 타인, 에로스, 고통, 고향, 외로움, 죽음, 종교, 일과 사랑 등 인생의 한순간에 관해 쓰여있다. 불행한 성장과정을 겪었지만, 삶을 향한 시선은 따뜻하고 정의롭다. 권위와 폭력에 맞서며, 진정한 인간애를 추구한다.


알트만은 문학의 깊이와 센스 있는 위트 감각 모두 갖췄다. 이중 작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와, 코믹버전인 비행기 테러범(아기 울음소리) 이야기다.


특히 종교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전쟁과 폭력에 관해 말하면서 신을 결부시킨다. 무신론자인 그는 구약성서 구절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성서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일부 인용하면,


"우리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됐다고? 신의 유전자에 살인 유전자도 들어있나? 물론 아니다. 사랑의 신이면서 동사에 소름 끼치는 신은 없으니까. 그저 태곳적부터 인류를 괴롭히는 이 천상의 마술 주문이 있을 뿐이다."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삶의 목표도 가치관도 다르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개인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때,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할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적절한 행운과 우연도 필요하다.


알트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생각난다. 천사 미하일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깨달은 것은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산다는 것이다. 구두장이 이야기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다. 그건 오히려 축복이다. 미지의 무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들은 한 편의 엽편소설처럼 읽힌다. 때론 사회비평을 보는 것 같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이 타인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게토 유대인을 탈출시킨 이야기,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사람을 위로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절망의 시간을 딛고 온기 가득한 삶으로 바꿔나간 알트만의 에세이는 읽고 나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책, <나를 사는 순간>에 담겨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