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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의 서재
  • 토지 1
  • 박경리
  • 12,150원 (10%670)
  • 2012-08-15
  • : 5,822

 2달 가까이 책을 읽고나니 괜히 어려운 소설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토지 전권이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주신 책이다. 사실상 나에게 주신 유산이라 해도 되겠다. 어릴 적에 할머니 댁에 가서 뭣도 모르고 그냥 책이 주르륵 있으니 예뻐보였다. 그래서 갖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한평생 이 책을 여러번 읽으셨다던 할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모두 나에게 주셨다. 그게 얼마나 큰 애정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가늠이 안 된다. 자신이 평생 사랑한 책을 모두 줄 만큼 나를 사랑하셨다는 거겠지. 나이가 들고, 할머니께서 떠나시고 난 지금에서야 나는 이 책을 펴본다.

 어릴 적 나는 박경리 선생님 문학관에 간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 꿈이 소설가였던 나는 문학관과 그 옆 무덤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이 쓴 문학작품을 보며, 나도 저런 소설가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물론 지금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열었다. 책의 첫장을 펴니, 박경리 선생님의 서문이 나왔다. 암 투병 중에 글을 놓지 않고 끝까지 쓴 소설이 이 책이라 했다. 암 투병. 엄청난 두려움과 아픔 속에서 쓴 글이었다. 새삼 박경리 선생님은 태산처럼 큰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꼭 책을 끝까지 읽어야 겠다는 왠지 모를 사명감을 느꼈다.

 토지 1권은 소설에 나오는 전반적인 인물들의 삶을 묘사한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인물 묘사만으로 1권이 꽉 채워진다. 소설의 배경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동에 사는 평범한 농민들과 최참판 댁이다. 최참판댁은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 양반댁으로, 이 근방의 토지는 다 이 집 소유라 보면 된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최참판 댁이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는 소문도 떠돈다. 특별히 악독한 집안은 아니지만 차갑고 지체 높은 양반댁이기 때문이다. 이 집의 가장은 최치수이며 가족으로는 그의 어머니 윤씨부인, 부인 별당아씨, 딸 서희가 있다. 집안의 종으로는 구천, 돌이, 삼수, 간난할멈, 봉순네, 연이네, 길상이 등등이 있다. 차갑고 조용한 와중에 종들의 소근거림만이 들리는 최 참판댁에서, 어느 날 사단이 난다. 별당아씨가 종놈인 구천이와 도망을 친 것이다. 마을 전체에 이 소문이 퍼지고 별당아씨와 구천이에 대한 욕설,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마을 농민들은 각자 최참판 댁 땅을 빌어먹고 산다. 예쁘장한 임이네, 막무가내인 양반 남편을 모시고 사는 함안댁, 덕 있게 사는 두만네, 남편의 외도로 애간장을 끓는 강청댁, 동네 미친여자인 또출네, 과부인 막딸네 등이 삼삼오오 모여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수다를 떨곤 한다. 별당아씨와 구천이가 사라진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깃거리였다. 동네에 또다른 바람난 사내가 있었는데 그건 강청댁의 남편이다. 강청댁 남편 용이는 어릴 적부터 무당집 딸인 월선네를 사랑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강청댁과 맺어졌다. 오랜 세월을 그러려니하고 살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월선네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된 날 이후로, 결국 바람이 나고 만다. 강청댁은 뒤집어지고 마을에서 또 한 바탕 난리가 난다. 한편, 노름이나 일삼는 한심한 양반인 김평산은 최치수네 재산을 노리고 그 집 종인 귀녀와 무슨 음모를 꾀한다.

 1권의 내용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1권을 읽으면서 내내 박경리 선생님의 표현력에 감탄했다. 쓰는 어휘가 풍부하고, 분위기에 어울리게 소박해서 단어를 계속 입에서 되뇌였다. 유시민씨가 토지를 5번 읽고나면 어휘력이 풍부해진다고 했던 말이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았다. 또한, 그 당시의 여성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진 책이었다. 책 속에서 묘사되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여성의 삶은 정말로 비참했다. 현대의 여성인 나로서는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남편의 외도에 분노하는 강청댁을 보며 다른 아낙네들이 여자가 투기가 많아서 못 쓴다고 이야기한다. 노름밖에 하지 않고 자신을 때리기까지 하는 김평산을 함안댁은 모시고 산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은 아무렇지 않고 양반집 부인조차 겁탈을 당한다. 토지를 읽는 내내 당시 여성들의 삶과 남성우월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그 시대가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소설 속에 들어가 여성들 모두에게,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저런 게 무슨 남편이라고 밥을 먹여줘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처음에는 마냥 분노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우리는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같이 했던 책이다.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깊이 있고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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