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고어 자본주의
어떤 2025/01/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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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한국여성학회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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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페미니즘
#한국여성학회
#한겨레출판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
...발렌시아는 '고어 자본주의'라는 말을 고안한다. 이는 "극단적이고 잔혹한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고어'에서 차용해온 말이다. 발렌시아는 이 단어에 일말의 희망을 심어놓는데, 멕시코가 아직 회복 불가능한 아노미 상태인 '스너프'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렌시아는 제발 스너프 자본주의까지는 가지 말라고 절박하게 제안한다.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단계가 잔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어 자본주의에서는 "죽음이야말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고, "몸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생산물이자 상품"이다. 여기에서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과 시신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삼는 고어 자본주의는 멕시코만의 특수성이나 잔혹성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어 자본주의는 포스트-포드주의 이후 펼쳐지고 있는 전 지구화, 즉 불균등 지역 발전 및 고도소비사회의 도래와 관계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장르인 '고어'로부터 이 타락과 착취의 생산 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25~26p
디지털 고어 자본주의의 행위자들 사이에는 이처럼 타인을 쉬이 대상화하여 노리개로 삼는 동시에 생산의 수단으로 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 이런 남성들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바렌시아의 작업에 기대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화 이후로 고도소비사회 속에서 저소비로 버티는 취약 계층이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로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하면서 고어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체인 '엔드리아고 주체'가 등장한다.
고어 남성성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대상화'다. 내가 주목의 중심이 되고 영웅이 되기 위해서 고어 남성성은 그 어떤 것도 도구화할 수 있다. 존 M. 렉터는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 과정"이 바로 대상화라고 설명한다. 렉터에 따르면 "대상화 개념은 어떤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라 일종의 오해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타인을 총체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보다 못한 존재로 오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오해의 스펙트럼은 경미한 수준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다." 마사누스바움은 특히 온라인에서의 폭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에 주목하고, 대상화의 성별성을 분삭한다. 남성들은 (1)도구성 (2)자율성 거부 (3)비활성 (4)대체 가능성 (5)가침성 (6)소유권 (7)주체성 거부 (8)신체로의 축소 (9)외모로의 축소 (10)침묵시키기의 열 가지 방식을 통해서 여성을 "한낱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누스바움은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포르노그래피적 방식을 통해 일어나는 원인을 '원한'과 '경쟁심'에서 찾는다.
40~41p
또한 불법촬영 및 불법유포와 연계되는 유형의 범죄 행위들에 대한 위계적 인식 또한 내포되어 있다. '촬영'이라는 행위에서는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인지 이미지인지에 따라 그리고 그분량에 따라 범죄의 중함 정도가 달리 파악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점은 촬영물과 개인 정보를 포함한 촬영물 관련 정보의 유포, 동영상과 사진 간의 위계적 범죄 인식이 여성들이 겪는 피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상 피해 구제에 실효적이지 못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촬영이라는 가해행위에 맞춰져 있기보다 촬영된 여성이 얼마나 더 성적으로 재현되었는가, 얼마나 성적으로 보이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해행위 자체가 아니라 기술매개 성폭력 피해 결과물의 '음란성'의 정도가 피해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성폭력 피해를 보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보여준다.
101~102p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보통 비자발적 독신을 의미하는 '인셀'이라고 불리는데,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케이트 만은 독신에서의 단순한 낙담 상태와 대비되는 '비자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소위 알파메일이라 불리는 남성들에 비해 낮은 지위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취약한 존재로 인식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실의 남성 특권이 이와 같은 스스로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고통이 사회적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332p
💡
'고어 자본주의'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개념을 통해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군림하고 싶어하고 그를 전시하고
조직적으로 소비하고 조롱하고 가해하는 현실이
그들이 재판정에서 변명하듯 '술김에', '본능적으로'가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심지어 꽤 잘 팔리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느꼈다.
더럽고 추악한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 힘겹고 슬프지만
절대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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